<문화부장이 ‘사람으로 쓰는 편지’>‘친절한 훈숙’씨… 발레공연 해설 10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발레 동작을하며 해설을 하는 문훈숙 단장.

① 유니버설발레단장 문훈숙

문 부장, 문화부 데스크 노릇이 즐거우신지? 자네가 한 경제신문의 문화부장이 됐다고 했을 때 반가웠네.

되돌아보면, 자네와 나는 한 신문사에서 일하던 젊은 시절에 공연장을 함께 찾아다닌 인연이 있어. 사내놈 둘이 발레 공연을 보곤 했지. 당시에 둘 다 문화부 기자가 아니었는데 발레 작품을 꽤 자주 봤네. 자네 친구 중에 남성 무용수, 즉 발레리노가 있기 때문이었어.

그 시절에 처음 접한 발레 작품이 ‘백조의 호수’일세. 1993년 유니버설발레단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린 것이었지. 그날 무대의 주인공은 단연 문훈숙 발레리나였어. 세계 발레계가 인정한 국내 발레리나 1세대. 그녀는 주역으로서 파트너와 한 호흡이 돼서 우아한 춤 선을 만들어냈지. 고난도 회전에 도전해 성공했다는 게 다음 날 기사로 나기도 했어.

발레는 신체의 관습적 움직임에 맞서는 예술이지. 발가락이 뒤틀리는 고통을 이겨내야 지극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걸 현재 국립발레단 감독을 하고 있는 강수진 씨의 상처투성이 발 사진에서 절감했지. 자네와 내가 1994년 문예회관대극장에서 강수진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봤던 것도 생각나는군.

문훈숙은 강수진의 4년 선배라고 들었네. 리틀엔젤스 예술단, 선화예·중고, 모나코왕립발레학교까지. 문훈숙이 걸어간 길을 강수진이 바라보며 자기의 길을 낸 것이지.

문훈숙은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의 창단 멤버로 들어와 1995년부터 단장을 맡아 왔다고 하더군. 30대 초반에 발레단 CEO를 맡은 셈인데, 클래식 불모지인 한국에도 발레가 있다는 걸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네. 1998년부터 북미, 유럽 등에 투어를 다녔고, 2011년 창작 발레 ‘심청’이 큰 성공을 거뒀지. 발레 본향인 러시아, 프랑스 초청을 받아 클래식 한류를 일으켰다는 평가를 들었어. 올해 9월엔 역시 창작 발레 ‘춘향’이 남미의 콜롬비아 초청을 받아 무대에 오른다더군.

물론 국내 관객들에게도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어. 근년에 그중 몇 개를 봤는데, 문 단장이 공연 전에 잠깐 무대에 등장해서 해설을 하더군. 공연 줄거리와 함께 주요 춤 동작의 의미를 알려줬어. 낯설지만 신선하더군.

최근 문 단장에게 물으니 이렇게 해설을 한 지가 꼭 10년이 됐다더군. 2008년 ‘지젤’ 때부터였다는 거야. 문 단장은 2001년까지 무대에서 직접 춤을 췄는데, 은퇴 후 사람들을 만났더니 발레를 너무 어려워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해. 그래서 도입한 게 공연 전 해설과 자막. 이른바 ‘정통’을 고집하는 이들의 반대에 부닥쳤으나, 발레와 대중을 좀 더 가까이 이어주기 위해 과감히 시도했다더군.

나는 사실 그 ‘비(非)정통’의 팬일세. 문 단장이 특유의 차분한 음성과 몸짓으로 사전 해설을 해 주는 게 매력적이야. 이달 20~22일 공연하는 ‘돈키호테’를 기다리는 이유 중의 하나야. 아쉽게도 문 단장의 해외 출장 일정 탓에 해설을 하기 어렵다고 하더군. 오는 11월의 ‘라 바야데르’에서는 꼭 해설을 하겠다니 기다리는 수밖에….

“유니버설발레단은 클래식에 치중하고 모던발레는 잘 하지 않는 듯 보인다”고 아는 척을 했더니, 문 단장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답하더군. 클래식뿐만 아니라 모던, 드라마, 창작 발레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시도한다는 거야.

문 단장은 겉보기에 가냘프지만,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단이 있는 듯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리틀엔젤스예술단의 음악을 혁신하기 위해 박칼린 씨를 영입한 것도 그 일환이겠지.

잘 알다시피, 문 단장에겐 특정 종교 꼬리표가 있어. 예술가인 문 단장이 그 종교 행사에 참석해 만세 삼창을 하는 사진을 보면 어색한 게 사실이야. 그런데 문 단장은 자신의 신앙이 예술을 높은 경지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믿음을 분명히 갖고 있더군. 그 깊이를 나는 잘 모르겠네. 다만, 예술가는 수도자처럼 늘 심신을 갈고닦아야 한다는 소신을 그녀가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어. 문 단장과 함께 일해 온 사람들은 그녀가 참 소박하고 겸허하다더군. 그런 평판이 앞으로도 지속하기를 바라네.

문 부장, ‘사람으로 쓰는 편지’의 첫 번째 인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군. 어쨌거나 우리도 이제 중년이니 저녁 술을 줄이고, 공연을 많이 보세나. 문화 데스크로서보다는 그저 관객의 시각이 좋지 않을까 하네. 젊었을 때의 흥감이 되살아나진 않겠으나, 세상을 좀 살아본 사람의 시각에서 보는 무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으니.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