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軍縮 기본 무시한 국방부 ‘가속 페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4·27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장성급회담, 체육회담, 적십자회담, 철도회담, 도로회담, 삼림회담 등이 줄줄이 개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7∼8월의 일정은 더욱 복잡하다. 평양에서 개최되는 남북 농구대회를 시작으로 남북한의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기 위한 점검과 조사도 이뤄진다. 8월에는 남북 이산가족들이 금강산에서 상봉하고,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되는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는 남북 선수단이 공동으로 입장할 예정이다. 6개월 전만 해도 상상 못 할 일들이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각 부처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경제 부처들은 정중동이다. 무엇을 하겠다는 언급조차 없다.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충분히 고려한 것 같다. 바람직하고 신중한 행보다. 그 반면에 국방부는 다소 조급한 것 같다. 군축(軍縮)을 향해 과속 페달을 밟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단거리 미사일 요격용인 철매-Ⅱ 개량형의 대량생산을 재검토한다든지, 비무장지대(DMZ) 남쪽 5∼10㎞ 내의 군부대 시설 공사나 진지 공사를 보류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시점에서 국방부가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4·27 판문점 선언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 제2조는 군사적 긴장 상태 완화를 위해 남북이 해야 할 일을 3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적대행위 전면 중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평화수역화, 남북한 교류협력과 왕래에 따른 군사적 보장 대책 등이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중단했다. 또한,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포함한 한·미 연합훈련도 유예할 예정이다.

그러나 남북 장성급회담을 개최했지만, NLL일대의 평화수역화에 합의하지 못했고,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북한이 장사정포를 뒤로 물린다고 해서 NLL을 양보해서도 안 되고,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화한다고 해서 백두·금강 정찰기의 정찰 활동을 그만두게 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군사분계선 쪽으로 바짝 다가와서 이중 철책을 쳐 놓은 북한의 추진 철책을 원래 지역으로 돌아가서 설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4㎞의 폭을 가진 완전한 비무장지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방부는 판문점 선언 제3조의 군축 관련 조항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남북한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군사적 신뢰가 구축되는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간다’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국방부는 군축부터 할 게 아니라, 신뢰 구축부터 해야 한다.

통상 적대국끼리는 먼저 군사적 신뢰 구축을 한 연후에 운용적 차원에서 군사력을 통제하고, 그 후에 군축 등 구조적 차원에서 군사력을 통제한다. 군사적 신뢰는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의 완전 복구와 서해상 남북 함정 간에 국제무선통신망으로 교신하는 것만으로 구축되지 않는다. 탈냉전 초기 동서유럽이 그랬듯이 상호 군사력의 공개(무기 체계·종류·수량·배치 등), 상호 훈련의 참관, 고위급 군 인사의 상호 방문, 각급 군사학교의 상호 학생 교환, 함정 및 항공기의 상호 방문 등이 이뤄져야 신뢰가 구축된다.

따라서 국방부는 평화 체제의 최종 상태(end state)를 설정한 다음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큰 그림을 먼저 그려야 할 것이다. 그 순서는 신뢰 구축 →운용적 군비통제→구조적 군비통제가 돼야 한다. 경중완급의 속도 조절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