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y >6·25 참전국이 해외에 보신탕 고발… “야만국가” vs “전통문화”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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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8-07-0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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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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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고기’ 과거에도 뜨거운 감자

조선시대 때 보양식으로 인기
“음식 아냐” 못마땅해한 기록도

1980년대 국제스포츠 행사로
혐오업소 정비 명목 뒷골목行


개고기 식용 문화는 해묵은 논란거리다. 기록을 보면 조선 시대에도 개고기 식용을 두고 찬반이 나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해외에 국내 개고기 식용 문화가 알려진 것은 1950년 6·25전쟁 참전국들에 의해서다. 1980년대 들어 한국이 올림픽 등 각종 국제행사를 주최하면서 개고기 식용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당시에는 ‘개고기는 야만’이라는 일부 국가 애견인들의 주장과 고유의 문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한국의 주장이 충돌했다.

4일 문헌에 따르면 개고기는 조선 시대에도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에서 개고기는 ‘오장을 안정되게 하고 혈맥을 돕는다. 장과 위를 두껍게 하고 허리와 무릎을 데워준다. 누렁개의 고기가 좋다’고 돼 있다. 실학자 정약용도 개고기 애호가였다. 특히 정약용은 흑산도에서 유배생활 중인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섬 안에 산개(山犬)가 100마리가 아니라 1000마리도 넘을 텐데 제가 거기에 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삶는 것을 결코 빼놓지 않겠습니다(다산 시문집)’라고 쓸 정도였다.

반면 개고기 먹는 문화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도 있었다. 영조 때 문신 이종성은 개고기는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유원의 문집 임하필기를 보면 “이종성은 남의 집 잔치에 참석했다가 ‘개장국(개고기 장국)’을 보고서 먹지 않고 돌아와선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해외에 개고기 식용 문화가 알려지며 논쟁이 거세진 것은 6·25전쟁 때부터로 전해진다. 6·25전쟁 참전국들은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난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개장국으로 불리던 것을 ‘보신탕’이라는 모호한 신조어로 바꿨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고기는 뒷골목으로 밀려나는 운명을 겪는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등 각종 국제행사를 앞두고 정부가 외국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업소를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개고기 산업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1984년 서울시가 개장국을 혐오식품으로 지정해 판매를 금지하자 단속을 피하기 위해 ‘영양탕’ ‘사철탕’이란 이름도 생겨났다. 그러나 전통 음식을 억압한다는 반론이 거세지면서 결국 고시는 사문화됐다. 최근에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개고기 식용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된 바 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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