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깨러 가는데… ‘사우나 사망’ 10명중 8명 음주 탓

서울대의대, 103명 부검 분석

급성심근경색증 등이 주원인
평균 알코올농도 0.17% 달해
엎드린 자세가 사망 위험 높아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58) 씨는 평소 회식과 모임 등으로 술자리가 잦아 숙취를 다스리기 위해 종종 집 근처 사우나를 찾는다. 혈압이 높은 이 씨에게 주변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사우나에 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지만, 이 씨는 “술을 마신 다음 날 새벽에 사우나에 들어가 땀을 흘리고 나면 노폐물과 함께 숙취도 빠지는 기분이라 개운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팀은 2008년부터 2015년 사이 이뤄진 전국 사망자 부검사례 중 사우나에서 숨진 26∼86세 103명(평균 나이 55세)을 대상으로 음주와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음주가 사우나 사망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5일 밝혔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음주 후 사우나의 사망 위험성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다.

분석 대상자 103명은 모두 사우나 룸에서 숨진 경우로, 부검 결과 무려 81명(78.6%)의 혈액에서 실제로 과도한 수준의 알코올이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평균 알코올 농도는 0.17%로 통상 음주운전 적발 시 운전면허 취소 처분에 해당하는 ‘술에 만취한 상태’인 0.1%를 넘어섰다. 사망자 대부분은 술자리가 끝나고 3∼6시간이 지난 후 사우나를 찾았다.

사인으로는 13명이 사고사, 82명이 자연사로 각각 분류됐다. 나머지 8명은 사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사 중에서는 고체온증과 급성 알코올중독이 각각 9명, 4명이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30% 이상이면 급성 알코올중독에 해당한다. 자연사 중에는 급성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을 비롯한 허혈성심질환(40명)과 기타 심장질환(38명)으로 인한 사망이 대부분이었다.

사우나 내에서 엎드려 있는 자세도 사망 위험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연구팀은 술에 취한 채 사우나 안에서 엎드려 있게 되면 가슴의 움직임이 불편해지고 호흡도 어려워져 사망위험이 크게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실제 술에 취한 사망자만 두고 봤을 때의 비교 사망위험은 엎드린 자세가 누운 자세의 11.3배에 달했다.

유성호 교수는 “적절한 사우나는 뇌졸중 예방 등 건강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음주 상태에서 사우나를 이용하면 오히려 사망위험이 높아진다”며 “음주 다음 날 조금이라도 숙취가 있을 땐 사우나를 이용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법의학·병리학 저널’(Forensic Science, Medicine and Pathology)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