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글로벌 무역戰 확산에도 무대책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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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서울대 교수·경영학

지난 5일 중국 식량비축공사는 미국산 대두(콩) 7만t을 수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두를 운반하던 선박이 예정보다 하루 늦은 6일 오후에야 중국에 도착하면서, 미국산 대두에 25% 관세를 납부해야 하는 첫 사례가 됐다. 251억 원어치의 대두를 수입하면서 관세로만 67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지나치기 어려운 것은,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미국산 대두는 약 15조5000억 원에 이르며, 미국에서 수입하는 모든 품목 가운데서 보잉 여객기 다음으로 많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미·중 간 무역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미·중 간 무역전쟁이 시작되자 일각에서는 벌써 제2의 대공황을 걱정하고 있다. 근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스무트홀리관세법은 대공항 초기 무렵인 1930년에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2만여 개 수입품에 대해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한 법안이다. 그 후 여러 국가가 보복 관세 및 수입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전 세계 무역 거래가 급감했고, 이후 대공황이 심해졌다고 보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글로벌 무역전쟁의 확산 양상이 예사롭지 않다. 철강·알루미늄으로 시작된 무역전쟁이 자동차와 농산물, 의류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다 미·중뿐만 아니라, 새로 가담하는 국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캐나다는 지난 1일부터 126억 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에 보복 관세 10%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멕시코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따라 돼지고기, 감자, 위스키 등에 적용되던 특혜관세를 폐지했고, 지난 5일부터는 미국산 농산물과 철강 등에 대해서 15∼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지난 6일 미국산 건설·도로 장비, 석유·가스 설비 등에 대해 25∼40%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관세 부과 정책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했던 목적을 궁극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일례로 유럽연합(EU)에서 미국 제품에 대해 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자 최근 미국의 오토바이 제조사인 할리데이비슨이 유럽 수출용 오토바이를 생산하는 미국 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결정을 했다. 할리데이비슨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선택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가 간 무역전쟁이 확산될수록 한국 경제의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일부 보고서는 미·중 간 무역전쟁 때문에 한국 기업의 중간재 수출 차질 금액이 약 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자동차와 부품 수출뿐만 아니라, 중국은 대미 무역전쟁에 대한 대응책 중 하나로 미국과 한국 스티렌 제품에 대해서 최대 55.7%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례없는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글로벌 무역 및 관세전쟁에 대해서 실효성 있는 대응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10%가 채 안 되는 처지에서, 15%를 훨씬 초과하는 관세 장벽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수출 시장에 현지 공장을 세우는 것이 대안이다. 하지만 미국·중국·EU 모두가 주요 수출시장인 상황에서 현실적으론 실현 가능성이 작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거나 규모가 영세한 기업일수록 더욱 힘들다. 경영자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