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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er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07월 11일(水)
베스트셀러 작가 정유정 “등단用 문학상만 11번 낙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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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정유정도 작품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문학적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어떤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건 ‘쓰고 싶은 것인가’에 대한 욕망. 그는 “문학성보다는 재미와 의미가 먼저다. 이걸 쓰고 싶은가가 중요하다. 주인공과 작품을 사랑한 나머지 마음이 펄펄 끓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간호사 등 10년이상 직장생활
41세 세계청소년문학상 등단

17번 수정 ‘7년의 밤’ 애착 커
‘28’은 가장 고통스럽게 작업

한 작품 쓰기위해 1~2년 취재
이후 초고는 3개월이면 완성

히말라야·산티아고 순례길…
재충전 위해 종종 도보여행

‘7년의 밤’도 영미판 계약
차기작 죽음에 관한 이야기


지난 6월 20∼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던 ‘2018 서울국제도서전’. 23일 작가 사인회가 있던 날, 관람객이 두 배로 몰렸다. 문학계 불황이라는 우려가 느껴지지 않는 모처럼의 활기. 그중에서도 은행나무 출판사 부스에서 관객을 응대한 정유정(52) 작가는 압도적인 팬덤을 보였다. 늘어선 줄이 너무 길어 나중엔 출판사 측이 자진해서 사인회를 ‘커트’해야 했다.

대표작 ‘7년의 밤’이 영화화되고, 최근작 ‘종의 기원’이 미국 시장에 소개되는 등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정 작가를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은행나무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스키니 진에 빨간 블라우스로 멋을 낸 그는 “무명작가의 설움을 잘 알기에 지금 제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너무 감사해요”라며 활짝 웃었다.

◇간호사에서 늦깎이 작가로 = 정 작가는 국내 문단에서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등단이 또래 작가들보다 늦었다. 2007년 데뷔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았을 때가 41세였다.

등단이 늦은 건 중간에 인생의 진로를 바꿨기 때문이다. 그는 간호사였다. 광주 기독간호대를 졸업하고 1987∼1992년 광주보훈병원에서 근무했다. 1992년부터 2000년까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심사직으로 일했다. 1994년 결혼해 이미 아들까지 둔 워킹맘이었다.

“제가 4남매의 맏이예요. 어머니는 저를 맏아들처럼 대해주셨어요. 어려서부터 꿈인 작가보다 집안일을 돌보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40대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군대 가는 남동생까지 돌봐야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를 처음 배웠어요. 1990년대 말엔 컴퓨터 동호회인 하이텔의 문학관에 소설 습작을 올리는 게 유행이었는데 저도 시험 삼아 11세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성장소설을 올렸다가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신이 나서 연재한 글을 모아 겁도 없이 출판사에 보냈는데 출간하자고 했어요. 운이 좋았죠. 하지만 그 전에 등단부터 해야 한다나. 그래서 각종 문학상에 응모했는데 웬걸 그로부터 11번이나 낙방했습니다.”

실패가 거듭되면서 정 작가는 크게 방황했다. 만만하게 봤던 글쓰기가 악몽으로 변했다. 자신감은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던 건 자신과의 진지한 대화 때문이었어요. 스스로 묻는 거죠. ‘나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인가’ 하고… 자유 의지에 관한 이야기랄까. 글을 쓰고 싶은 건 성공하든 실패하든 받아들이는 것일 테고, 작가는 직업의 개념이 있는 것이고… 저는 성공하지 못해도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2007년에 이어 2009년 ‘내 심장을 쏴라’로 또 한 번 세계문학상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내 심장을 쏴라’는 이민기·진구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문학계뿐 아니라 영화계에도 널리 알려졌다.

◇7년의 밤 ‘17번 고쳐 써’…‘28’ 재평가됐으면 = 그 뒤 정 작가를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이 소위 ‘악의 3부작’으로 불리는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이다. ‘7년의 밤’은 2011년 출간돼 현재까지 누적 55만 부가 팔린 스테디셀러다. 지난 3월에는 추창민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돼 개봉됐다. 류승룡·장동건·송새벽 등이 출연해 연기 변신을 보여줬다. 하지만 영화 ‘7년의 밤’은 소설의 명성에 비해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7년의 밤’은 지금까지 제 소설 중 가장 많은 17번을 고쳐 쓴 작품이에요. 그만큼 애착이 크죠. 하지만 영화 흥행이 좀 안 됐다고 해서 영화가 소설을 망쳐놨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아요. 영화는 영화 나름의 작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추 감독의 영화를 보고 감탄했어요.”

2013년에 나온 ‘28’은 정 작가가 가장 고통스럽게 썼던 작품이다. ‘7년의 밤’이 크게 성공했지만 너무 대중적인 나머지 문학성을 공격받았던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었다. 가상도시 화양에서 번지는 괴질의 공포를 그렸다. 주요 등장인물 5인의 시점과 링고라는 개의 시점까지 6개의 관점에서 생존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았다. 다중적 시점, 특히 동물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이야기를 버무렸다는 점에서 이전에는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장편이었다.

“‘28’은 전남 증도에 들어가 초고를 2500장이나 썼어요. 나중에 디테일을 수정하면 되겠다 싶어서 기분이 좋았죠. 다시 쓰려는데, 이번엔 한 자도 안 써지는 거예요. 고민 끝에 친구이자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이고 제 작품의 첫 번째 모니터인 안승환 감독에게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안 감독이 혹평했어요. 머리에 망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문학을 해보려다 저를 잃은 거죠. 곧바로 짐을 싸서 다시 지리산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이야기의 뼈대만 남기고 통째로 다시 썼어요.”

힘을 준 것에 비해 ‘28’은 다른 ‘악의 3부작’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정 작가에게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대목이다.

◇‘종의 기원’ ‘7년의 밤’ 영미판 잇단 계약 = ‘28’로 홍역을 치른 후 정 작가는 2016년 3부작의 마지막 격인 ‘종의 기원’을 펴냈다. ‘종의 기원’은 1994년 아버지와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 증거를 없앴던 희대의 살인범 박한상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사이코패스’라는 개념도 없던 그 시절, 20대의 정 작가는 그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인간이 그런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인간에 대해 공부했다. 범죄심리학, 생물학, 진화심리학 책을 뒤졌다. 그리고 그동안 3인칭 시점으로 살폈던 사이코패스를 1인칭 화자로 등장시켰다.

‘종의 기원’은 최근 해외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최대 출판사인 펭귄북스에 의해 영미판이 번역·출간됐다. 영문명은 ‘더 굿 선(The Good Son)’. 출간되자마자 퍼블리셔스위클리, 엘르 등 현지 유력 매체의 호평을 끌어냈고, NBC 간판 토크쇼인 ‘지미 팰런쇼’에서는 올여름 휴가지에서 읽을 만한 책 5권 중에 한 권으로 꼽았다. 지금까지 전세계 18개국에 판권이 판매됐다.

‘더 굿 선’은 ‘종의 기원’과는 큰 차이가 있다. 펭귄북스는 원작의 앞에 붙어 있는 프롤로그를 영문판에선 빼줄 것을 요청했다. 주인공 한유진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피 냄새를 맡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본론부터 들어가는 게 스릴러에 익숙한 미국 독자들에겐 더 적합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의외였어요. 사실 프롤로그는 편집자 요청에 의해 최종 원고 이후에 따로 붙인 것이었거든요. 바로 들어갈 경우 혼란스러울 독자들을 배려한 거죠.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걸 떼겠다고 하니 신기했죠.”

‘종의 기원’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펭귄북스는 ‘7년의 밤’도 번역하기로 했다. 빠르면 내년 말쯤 번역돼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정 작가의 데뷔작부터 ‘종의 기원’까지 장편 5편이 외국어로 번역되는 셈이다.

◇베스트셀러 비결은 엄청난 공부 = 정 작가의 소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각광받는 이유는 빈틈없이 짜인 스릴러 구조 때문이다. 간결하고 힘찬 문장, 눈으로 보는 듯한 세밀한 묘사,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스토리 라인은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런 장점은 치밀한 취재와 메모에서 비롯한다. 정 작가는 한 작품을 쓰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공부한다. 보통 1∼2년간 현장을 취재하고, 전문서적을 읽으며 준비한다. ‘종의 기원’도 사이코패스라는 주인공의 행동과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정남규·유영철·강호순 등 연쇄살인범들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정신분석학, 범죄심리학 등을 공부했어요. 사이코패스에 대한 자료가 국내엔 충분하지 않아 외국자료를 많이 참조했습니다. 자료가 부족하면 전문가를 만났어요. 경찰학교를 찾아가고, 프로파일러도 만났어요. 한유진을 ‘프레데터’라고 하는 표현도 그렇게 나온 겁니다.”

‘7년의 밤’ 때도 마찬가지다. 세령호 잠수 장면을 위해 전문 교관을 인터뷰했다. 포털 사이트의 잠수 카페에 몰래 들어가 보기도 했다. ‘28’ 때는 개와 늑대에 관한 책을 수없이 봤다.

“이러니 제가 다작을 못 해요. 공부에만 1∼2년이 걸리니까요. 그러나 스릴러는 디테일에 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히말라야와 산티아고 = 그렇다면 무엇보다 체력이 문제일 터. 정 작가는 운동 마니아다. 오래전부터 복싱과 수영을 했다. 복싱은 7년, 수영을 배운 지도 3년이 넘었다. 몸 쓰는 걸 좋아한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네팔의 히말라야 산맥으로 간 것도 정 작가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7년의 밤’과 ‘28’을 출간한 정 작가는 온몸이 방전된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쓰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다. 살기 위해 떠나야 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최고 5416m 트레킹 코스인 ‘쏘롱라 패스’가 눈에 들어왔다. 2013년 10월 평소 친분이 있는 김혜나 작가와 동행했다. 17박 18일 동안 걸었다. 고산병으로 고생했지만 완주했다. 그 여정을 에세이 ‘히말라야 환상방황’으로 펴냈다.

그러나 정 작가의 기행은 히말라야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4개월 만인 2014년 2월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혼자 도보여행을 떠났다. 프랑스 생장 피드포르에서 출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의 피니스테레(땅끝마을)까지 980㎞의 대장정. 40일간의 고행이었다. “한없이 걸으면서 ‘종의 기원’을 구상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종착지인 땅끝마을 바닷가가 보이는데 막 눈물이 났어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죠. 제 속의 뭔가가 한꺼번에 터졌던 거 같아요. 다음에 갈 곳도 정해뒀어요. 에베레스트.”

◇차기작은 ‘진이, 지니’ = 에베레스트행은 아마도 지금 쓰고 있는 차기작을 완성한 이후가 될지 모르겠다. 정 작가는 늘 그렇듯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직후부터 차기작 구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2년간 취재하고 답사하고 얼마 전 초고를 완성했다.

“언젠가 쓰고 싶었던 테마인 인간과 죽음에 관한 소설이에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이야기. 제목은 ‘진이, 지니’예요. 인류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를 연구하는 사육사가 주인공이죠. 이를 위해 영장류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님의 소개로 국내 영장류 연구자를 만났고, 그와 함께 일본 교토(京都)대 영장류 센터, 구마모토(熊本)의 보노보 생크추어리 등을 다녀왔어요. 침팬지, 오랑우탄, 보노보 등 영장류들을 보고 왔죠.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제 소설 처음으로 여자예요. 이제 초고 썼으니 앞으로 1년간 열심히 고치면 되겠죠?”

이날 3시간여의 인터뷰 후 정 작가와 기자는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더 나눴다. 그는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들어요. 제 앞가림도 못 하는데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지는 알 거 같아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아는 거죠. 그래야 자신을 던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오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소설 하나 추천합니다. 후배 작가인 이재량의 ‘노란 잠수함’입니다. 베트남전 참전 할아버지들이 주인공이에요. 재미있어요. 이번 여름에 한 번 도전해보시길 바라요.”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mail 김인구 기자 / 문화부 / 차장 김인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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