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금융 발전 가로막는 無경쟁·過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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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일 ‘금융감독 혁신 과제’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남짓한 기간에 최흥식 원장은 채용 비리 논란, 김기식 원장은 도덕성 논란으로 사퇴했다. 세 번째로 나선 윤 원장의 첫 작품은 실망스럽다.

금융산업의 사명을 소득주도성장 지원, 공정경제 구현 및 혁신성장 지원으로 정한 것부터 문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이미 실패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혁신성장과도 처음부터 불협화음을 만들어 냈다. 공정경제 구현의 구호도 관치(官治) 금융의 강화로 읽힌다. 금감원의 현실 진단도 문제다. 온갖 규제로 금융 창구에서는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 소비자들이 대출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 목록은 A4용지에 가득하다. 수많은 곳에 도장을 찍는다. 담보가 없으면 대출받기도 어렵다. 금융의 국제 경쟁력도 미흡하다. 우리 기업들은 다른 나라의 기업들보다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한다. 금융 혁신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없다.

금감원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가계 대출과 부동산 관련 대출 문제는 안정성만 강조한 결과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금융은 사라지고 가계 금융으로 안정성만을 추구했다. 금감원이 내놓은 금융 시스템 안정 방안은 과거 정책의 재탕이다. 이전 정부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을 우려해 고정금리 전환을 유도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도 지난 정부에서 마련됐다.

지금의 금융 상황은 그때와는 다르다. 수많은 소상공인이 폐업하고 있다. 지금은 경기 하락에 따른 생계형 대출과 소상공인 대출, 그리고 한계기업들에 대한 대출 등이 더 중요한 문제다. 현재 은행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서민들은 비은행권으로 내몰리고, 시스템 리스크는 오히려 상승한다. 거시경제적 악영향도 우려된다.

사회적 기업과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지원 강화도 공정경제 구현과는 관련이 없다. 경기 하락기에 금융 지원을 강화하면 다양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사회적 기업은 열악하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은 국민의 부담 증가로 돌아온다. 기부형 보험의 확대는 금감원이 독려할 내용이 아니다. 금융의 사회적 책임은 건전성을 유지하고 자금을 생산적인 곳으로 유도하는 일이다.

금융 질서의 확립 방안도 문제다. 근로자가 이사회에 참여하게 하는 등 금감원이 직간접으로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관치 강화다. 이사회를 통제하는데 어느 금융기관이 금감원의 말을 무시하겠는가. 또, 금감원은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곳이지 기업을 감독하는 기관이 아니다. 관치를 외려 더 강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금융 소비자의 권익 보호 방안도 이해하기 어렵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감독해 예금자를 보호하고, 금융기관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해 대출자들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금감원이 균형 감각을 잃고 대출 금리에 개입해선 안 된다.

금감원의 역량이 부족해 내부 혁신을 하겠다면서 실제로는 개입 분야를 확대했다. 표리부동하다. 결론적으로, 금감원은 이번 대책에서 규제와 관치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정권의 정책을 재탕하고 정치적 수사로 가득한 대책 발표로 금융 감독의 후진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우리나라 금융의 후진성은 경쟁은 없고 각종 규제만 난무한 금융 감독 관행에 기인한다. 금융이 혁신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 왕도(王道)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