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이 따라올 수 없는 감동…‘5.5㎏ 귀스타프 聖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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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28.5 세로 42.3 두께 7㎝
스위스서 가져온 고급 인쇄용지
한길사, 한정판 1000부만 찍어

“활자 미디어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에 아날로그 책의 아름다운 물성과 미학을 새롭게 구현하는 운동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큰 책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가로 28.5㎝, 세로 42.3㎝, 두께 7㎝, 무게 5.5㎏에 달하는 ‘큰 책’이 출간됐다. 양장본 표지는 종이지만 헝겊의 질감이 나고, 본문의 종이는 스위스에서 어렵게 공수해온 고급 인쇄용지다. 무엇보다 528쪽짜리 책은 성서의 이야기를 그린 ‘산상수훈’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오른쪽 그림) 등 241점의 압도적이면서 정교한 목판화 삽화가 담겨 있다. 한길사가 펴낸 19세기 프랑스 미술가 귀스타프 도레(1832∼1883·사진)의 기독교 성서 판화집 ‘귀스타프 판화성서’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17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들 특히 어린이, 청소년들이 디지털에 함몰돼 깊은 사유를 하지 못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디지털이 따라올 수 없는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근대 일러스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도레는 인상주의 거장 에두아르 마네와 생몰 연도가 같은 화가다. 책에 해설을 단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당시 인쇄기술이 발달하면서 책의 출간이 크게 증가해 값싼 삽화가 대량 등장했으나, 도레는 독자적인 회화 작품처럼 조형성이 강한 삽화를 큰 판형으로 고급스럽게 제작해 명성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삽화는 전통적으로 텍스트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지만, 도레는 160명의 목판 화가와 함께 작업하며 삽화를 책의 중심에 놓아 책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도레를 “정말 위대한 미술가”로 격찬했고, 도레의 삽화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삽화가로서 출판기획을 한 도레는 이번에 한길사에서 그대로 삽화를 옮겨놓은 ‘더 홀리 바이블’(1866) 이외에 단테의 ‘신곡’ 등 명작을 여럿 남겼다. 책에 실린 삽화는 목판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신 교수는 “당시 동판 기술이 확산됐지만 도레는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이미지를 만들어야 영적인 힘이 담긴다고 생각했다”며 “도레의 삽화가 담긴 책은 300~500프랑으로 거래됐는데, 인상파 화가 그림 한 점 값과 맞먹었다”고 말한다. 삽화를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탓에 도레 자신은 미술사에서 본류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2014년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등 재조명되고 있다.

한길사 김 대표는 “이번 책은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이 낫겠다고 판단해 1000부만 찍고 책마다 일련번호를 붙였다”며 “도레의 ‘신곡’과 ‘런던 순례여행’ 등도 이어서 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책이 워낙 무겁고 전시 중에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해 일반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온라인 주문을 받아 배송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