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세금 일자리’는 고용 해법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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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고려대 교수·경제학

2016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정치·경제적으로 크나큰 변혁이 일고 있다. 영국에서는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한 브렉시트가 진행 중이고, 필리핀에서는 기존 외교와 정치의 틀을 크게 벗어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집권 중이며,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세계 무역 환경을 크게 교란하고 있다.

이런 변화로 말미암아 이들 국가, 아니 전 세계가 치르고 있는 경제적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제조업 분야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결집이 있었는데, 이는 안정적 고용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사건이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목표로 내걸고 출범한 것도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문 정부 첫 400여 일 동안의 고용 창출에 대한 성적표는 매우 초라하다. 통계청의 고용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0만 명대 증가에 그치면서 취업자 증가 폭이 5개월 연속 10만 명 전후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18일 올해 취업자 증가 목표를 전년 대비 32만 명에서 그 절반 수준인 18만 명으로 대폭 하향 조정하기에 이르렀다.

한 경제의 고용 수준은 정부 정책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므로 현 고용시장 문제를 모두 문 정부의 실책으로 돌리는 건 합당치 않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점은 현 정부의 고용 증대와 양질의 일자리 정책이 장기적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출범 이후 일자리 본예산 외에도 추가로 17조 원에 이르는 예산을 추경예산과 일자리안정자금 등으로 투입했다. 이 예산은 우선 경찰관·소방관·사회복지사 등을 포함한 1만2000여 공무원 채용에 쓰일 것이라고 한다. 하향 조정된 18만 명의 취업자 창출 목표와 단순 비교하더라도 이 공무원 채용 인원은 너무나 미미하다. 게다가 공공부문 고용의 비용은 결국 차후 조세 수입으로 메워야 하므로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 재분배 정책으로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인상 속도 조절이 안 될 경우 고용시장, 특히 저숙련 노동자의 고용시장에 큰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은 이론상 일정 부분 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국내외의 경제학 실증 연구 결과에 따르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나마 근로시간 단축으로 고용 증대 효과를 얻기 위해선 단순히 상시 고용자 수, 즉 기업 규모에 맞춰 적용하기보다는 고용 효과가 큰 직군이나 업종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공공부문의 고용 확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국 한 경제의 고용 증대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민간부문에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느냐 하는 것이다. 민간 경제의 활력이 제고돼 기업이 더 많이 생기고 더 성장해야 고용 상황이 나아진다. 일자리 창출에 이것 이상의 왕도(王道)는 없다. 현 정부가 고용 증대를 제1 목표로 삼고 있다면서 민간경제 활성화에 최우선 순위를 두지 않고, 다른 정책에 변죽을 울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그 밖의 소득 재분배 정책들이 고용시장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민간경제 활성화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