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지만 ‘반성과 성찰’을 해야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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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심미적 형성 스스로 생각하기의 전통 / 문광훈 지음 ／ 에피파니

충북대 독문과 교수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인문서를 여럿 펴낸 저자가 이번에 ‘비극을 읽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비극과 심미적 형성’과, 이성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계몽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스스로 생각하기의 전통’을 동시에 펴냈다.

오이디푸스는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는 역병의 원인과 선왕의 사망 이유를 찾으려 한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기 위한 의지이고 숨겨진 것을 꺼내기 위한 열망이다. 하지만 이 의지와 열망은 적극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의 힘인 동시에 그를 파멸의 길로 내모는 원동력이 된다. 이처럼 비극은 악의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선한 움직임에서도 비극적 사건이 탄생한다. 옳고 그름이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옳음과 또 하나의 옳음 사이에, 진실과 진실 사이에 착잡한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비극의 복잡성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러한 비극을 읽고 쓰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되새김질하는가. 저자는 “반성적 거리 속에서 감정과 이성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감성은 좀 더 이성적으로 조직되고, 이성은 좀 더 감성적으로 구조화되는 것이다. 삶에 대해, 그리고 현실과 인간에 대해 우리가 좀 더 명료한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이며, 이 같은 정련화 훈련에 아주 좋은 재료가 되는 것이 비극, 특히 그리스 비극이다”라고 말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의 전통’은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근원적 기쁨이며 조금 더 이성적인 삶을 향한 가능성이다. 하지만 칸트의 말처럼 이는 ‘혁명보다 어려운 사고 개혁’이다. 끊임없이 부족한 나를 돌아봐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직시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토록 외롭고도 쓸쓸한 일을 감당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삶의 자발적 형성자이고, 나는 내 삶의 책임 있는 변형자여야 한다. 어떤 그들도 우리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지극히 어렵다. 삶의 계몽은 앞으로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저자는 이성의 필요성, 중요성을 강조하는 상투적인 결말보다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메말라가는 삶의 전체성, 그리고 이를 회복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성찰을 강조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스스로 책임지는 일상의 훈련에서 시작하자고 권한다. 결국 자발적인 주체로 태어나는 과정의 고통은 새로운 자기창조적 생활이라는 기쁨으로 열매 맺는다는 것이다. 각 176쪽·216쪽, 각 1만35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