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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8년 07월 20일(金)
조선시대 官奴에게 ‘80일 출산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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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여성차별이 유난히 극심했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시기 서구와 중국·일본에서도 지배층의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서구적 시각과 일제의 식민지 사관이 조선의 여성차별을 심하게 부각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림은 19세기 조선 말기의 풍속화가 김준근의 ‘단오추천’.

- 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 여성의 삶 / 장병인 지음 / 휴머니스트

실록·재판 기록·고문서 통해
이혼·간통·성폭행 실상 분석

동서양 전근대 사회 비교하면
조선이 성차별 극심하진 않아

여성규제는 성리학 탓 아니라
지배계층 흔들림 막기 위한것


“여자가 거절하는데 남자가 강제한 것은 이미 강간이니, 그 후의 일들은 말할 것이 못 된다. (…)죄는 필경 강제한 자에게 있으니, 혹 이 같은 송사가 있어 노영청의 판결에 의한다면 폐단이 있을 듯싶으므로 이에 변론하는 바이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미투(Me Too) 사례가 경찰 수사나 법정으로 갔을 때, 다시 여성을 괴롭히는 게 ‘강간이냐, 화간이냐’를 다투는 일이다. 피해 여성이 화간이 아님을, 즉 가해 남성의 강제성과 자신의 저항을 구체적인 물증과 함께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성이 끝까지 저항한다면 강간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1787년 오스트리아 형법에서 명문화됐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은 잠재적으로 미치고 있다. 위 변론문은 최근의 진보적인 글로 보이지만, 조선시대 이익(1681∼1763)이 성호사설(‘권 16’ 중)에서 펼친 주장이다. 옛적 명나라 관리 노영청이 화간과 강간의 구별을 판결하기 위해 힘센 노비를 시켜 여자의 옷을 벗기도록 했으나, 오직 속옷 한 벌은 여자가 죽기로 항거하여 못 벗겼다는 실험을 들어 화간 판결을 내렸다는 것인데, 그 판례가 조선의 당대에도 영향을 미쳐온 모양이다. 이익은 단호하게 노영청의 판례를 ‘말할 것이 못 되는 폐단’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흔히 우리는 ‘유교는 남존여비 사상의 근원’이라든지, ‘조선시대의 여성차별은 유례없이 극심했다’고 믿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한국여성사 영역을 개척해온 역사학자 장병인 충남대 명예교수는 이 책에서 그 같은 통념이 전통사회의 특성을 무시한 서구중심적인 사고와 아직도 불식되지 않은 식민사관의 영향 때문에 생겨났다고 말한다. 저자가 조선시대 가부장권의 강고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배층의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나타나는 공통 현상으로, 딱히 조선이 더 극심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시대 관청의 노비 부부는 산모에게 80일, 남편에게 15일의 출산휴가 제도가 있었고, 남녀균분상속이 법제화돼 지켜졌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2001년 모성보호법과 1990년 가족법 개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영국에선 19세기 후반까지도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력을 처벌 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일제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사회의 정체와 열악성을 강조하면서 ‘칠거지악’과 ‘재가금지’ 등으로 여성의 지위가 열악했다는 통념을 심었다.

저자는 조선의 실록, 재판기록, 일기, 고문서 등에 들어 있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조선의 혼인, 이혼, 간통, 성폭행의 역사를 밝힌다. 이를 통해 여성에 대한 강한 규제는 성리학이라는 특정 사상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는 사회구조적인 요인 특히 지배층(사대부)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바탕을 두었음을 드러내 보인다. 조선 초기보다 후기로 갈수록 여성에 대한 규제가 강고해지는데, 이는 사대부 지배층의 쇠퇴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것과 맞물려 진행된다.

예컨대 간통에 대한 처벌을 보면, 효종은 간통한 누이를 죽인 정호에 대해 “자기에게 누가 미칠 것을 면하려고만 했을 뿐 털끝만큼도 피붙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며 분노했다는 기록이 있다. 17세기 중반만 해도 성리학 이념이 건강한 수위를 유지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영·정조 때에 이르면 간통혐의만으로 여성들을 죽음으로 몰고, 부당하게 사적 징벌을 가한 남성에게 ‘호생의 덕’(好生之德·백성에 대한 사랑)을 빌미로 관용을 베푸는 일이 반복된다. 성리학 이념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지배계층의 흔들림을 막기 위한 ‘정절 이데올로기’에 대한 병적 집착이다.

저자는 조선시대에 가장 보편적으로 행해진 혼인절차를 중국과 다른 조선식 성혼의례인 ‘조선식 4례’로 재구성했다. 또 조선시대 성폭행의 실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출신 성분, 범죄 내용, 처벌 양상 등을 신분별로 전기와 후기를 나눠 상세하게 분석했다. 실록을 중심으로 ‘승정원일기’ ‘일성록’ 및 재판기록인 ‘추관지’ ‘심리록’ ‘흠흠신서’ 등을 통해 113건의 사건을 분석해 조선시대 강간 범죄의 양상을 드러냈다. 400쪽, 2만2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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