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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7월 25일(水)
풋내기 가우디에 100년 프로젝트 허락… 파밀리아 만든 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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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1882년 착공돼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김광현 제공). 작은 사진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완공됐을 때의 예상도(@https://youtu.be/RcDmloG3tXU).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⑤ 사그라다 파밀리아 (上)

136년째 짓는 파밀리아성당
2026년 완공 최고의 건축물

초유 프로젝트 가능했던 이유
건축주 ‘성 요셉 협회’ 덕분

“하늘과 땅을 잇는 교회 짓자”
가우디의 열정에 찬 설득에

‘사회에 미래와 희망을 주자’
건축주들 위대한 결단 내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누구나 칭찬하는 건축물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전(정식 이름은 Basilica i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일 것이다. 1882년에 착공했다는데 13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지어지고 있는 건축물.

한 건축가가 죽을 때까지 43년 동안 계속 지은 건축물. 건축가가 죽은 지 100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될 것이라는 소식에 ‘잘하면 나도 볼 수 있겠다’며 기대가 되는 건축물. 왜 그럴까? 기이한 형태와 엄청난 크기 때문인가? 흥미로운 에피소드 때문인가? 그러나 이 성당이 아무리 유명해졌어도, 건축가 가우디가 아무리 뛰어났다 해도, “그러자. 이런 성당이라면 저 가우디의 안을 받아들여 대를 이어서라도 지어보자”라고 그 건물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건축주가 없었다면 대를 거듭하며 이런 성당을 짓고 있을 리 없다. 우리는 유명한 것 자체에만 관심이 있지, 누가 어떻게 그 성당이 지어질 수 있게 동의해 주었을까 물으려 하지 않는다.

▲  가우디의 사인이 있는 단 하나의 스케치, 1902년.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정부의 지원이나 교회 재정으로 지어지게 된 건물이 아니다. 본래 이 성당은 평신도 단체를 위한 작은 성당으로 계획됐다. 이 성당을 짓자고 생각한 사람은 종교서적 출판사의 주인 주제프 마리아 보카베야(Josep Maria Bocabella, 1815∼1892)였다. 그는 선진 산업도시로 부를 축적하고 있는 바르셀로나에 땅에 떨어져 가는 신앙심을 되살리고자 1866년 신자들의 모임인 ‘성 요셉 협회’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이것은 교회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평신도 단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설립한 지 불과 10년 만에 회원이 60만 명에 이르렀다. 당시 바르셀로나 인구가 25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회원 수였다. 이탈리아 로레토의 성당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던 보카베야는 이에 큰 힘을 얻어 1874년 모든 회원이 한자리에 모여 미사를 드릴 ‘속죄하는 이들의 성 가족 성당’을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부분 가난한 회원들의 기부금으로만 충당됐다. 이들은 1881년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대지를 구입했다. 그렇지만 헌금은 기대처럼 모아지지 못해 몇 번이고 중단됐다.

보카베야와 그의 딸 부부가 죽은 후 1895년부터는 바르셀로나 대주교가 임명한 건설위원회가 건축주 역할을 대신했지만, 그 전까지는 ‘성 요셉 협회’가 이 성당의 건축주였다. 또 이 성당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가우디의 안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성당의 초대 건축가는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교구 건축가였던 비야르(Francisco del Villar, 1828∼1901)였다. 그는 어렵게 지어지는 성당이니 설계 업무를 무료로 하겠다고 나서 주었고, 가우디의 스승인 호안 마르토렐(Joan Martorell, 1833∼1906)은 이 일의 자문에 응했다. 1882년에는 보카베야의 구상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반영한 평범한 계획안이 착공됐다.

그러나 얼마 안 돼 성당의 재료 문제로 의견이 크게 대립됐다. 비야르는 성당은 성격으로 보나 구조로 보나 재료를 석조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건축비가 모자랄 것을 우려한 보카베야는 자문이었던 마르토렐의 의견을 따라 구조는 벽돌로 하고 바깥에 돌을 붙이자고 했다. 결국 주된 원인은 크게 모자라는 공사비였다. 이 문제로 비야르는 이듬해인 1883년에 사임했다.

보카베야는 마르토렐에게 후임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마르토렐은 자기 의견이 비야르 사임의 원인이 된 처지에 자기가 후임이 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여겨 거절했다. 그 대신 자기 대역으로 자기 밑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 건축가 가우디를 후임으로 앉혔다. 이때 가우디는 불과 31세. 건축사 자격을 얻고 나서 불과 5년밖에 안 되었고 이렇다 할 실적을 갖추지 못한 무명 건축가였다. 그런데도 이런 가우디는 무료로 봉사한 전임 건축가와는 달리 보수를 받는 건축가로 임명됐다. 이런 가우디에게 재원이 부족한 성당일지라도 이를 맡은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게다가 언제 끝날지 정해져 있지 않았으므로, 건설이 계속되는 한 가우디는 계속 보수를 받는 정규직에 취직됐다는 것도 그에게는 큰 매력이었다.

당시에 가우디는 보카베야와는 정반대의 인물로 반종교적인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뱉던 젊은이였다. 이런 가우디를 대단한 보수 단체인 ‘성 요셉 협회’가 선택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전해지는 말로는 이 성당의 건축가는 파란 눈을 가져야 한다는 계시를 받은 보카베야가 가우디를 본 순간, “이 청년이야말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가다”라고 했다고 한다. 오직 파랗고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는 것 하나로 가우디가 선임되었다는 말이다.

가우디의 빼어난 재능과 창조적 능력 때문에 2대 건축가로 임명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또 지금과 같은 엄청난 성당을 지을 것을 바라거나, 유능한 젊은 건축가를 키워주려고 맡긴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당시 경험도 없는 젊은 건축가가 적은 공사비에 작고 아담한 성당을 성실하고 무난하게 완성해 주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당시로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작은 성당 계획에 지나지 않았고, 당시의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는 전혀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책임 건축가가 되고 나서 4년 후인 1887년 전임 건축가의 안을 다소 변경하면서 지하 경당을 완성했으나, 건설비가 부족해 두 해 공사가 중단됐다. 그러다가 1890년에 다시 원형 제대 벽면 공사가 시작됐고 1893년에 마무리됐다. 비야르의 건축에 비판적이었던 가우디가 전임 건축가의 안을 유지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지하 경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자, 조금 여유가 생긴 가우디는 전혀 다른 새로운 건축을 머리에 그리고 있었다.

책임 건축가가 된 지 2년이 지난 1885년부터 가우디는 이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계획안을 새로 작성했다. 1893년에는 가우디의 새로운 안에 따라 아주 독창적인 ‘탄생의 파사드’를 착공했다. 따라서 새로운 구상은 1890년에는 이미 정해졌고, 적어도 1891년에는 ‘성 요셉 협회’ 회원들 앞에서 새로운 안을 제시하고 그들을 설득했으며, 협회는 이 시기에 이를 승인해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건설비용도 부족해 구조는 벽돌로 하고 외장을 돌로 붙이자고 해서 전임 건축가가 그만두었는데, 경험도 적은 젊은 건축가가 축구장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큰 성당을 짓자고, 게다가 높이 172.5m, 130m나 되는 여러 탑을 세우자고 나섰다. 규모가 작은 성당 건축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이들이, 가우디가 지금의 이 성당을 새로 제안했을 때 대뜸 그러자고 찬성해 주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엇을 믿고 이 엄청난 성당이 지금 우리 세대에 지어지지 못한다 해도, 다음 세대까지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지어져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을까? 예술적으로 참 아름다우니 한 번 지어보자고 했을까? 아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 세계의 건축가들은 부분이나마 이미 지어진 실물을 보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경멸하고 있었다. 가우디 안으로 공사가 시작된 지 18년가량이 지난 1910년 파리에서 국립미술협회가 가우디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기껏해야 얼음 과자 건축이고, 그 이미지는 소설에 등장하는 식탁에 나올 법하다”고까지 혹평했다. 심지어는 근대의 거장 르코르뷔지에도 1929년에는 중단된 이 성당을 두고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의 수치”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이렇던 그가 30년가량이 지난 1957년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라는 인물의 일대 사건”이며 “가우디는 위대한 예술가”라고 칭찬했다. 입장이 돌변한 것이다.

당시의 건축가들도 그러했는데, 도대체 ‘성 요셉 협회’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엄청난 가우디의 계획안에 동의하고 승인해 주었을까? 그리고 가우디는 과연 협회 회원들 앞에서 무엇을 보여 주며 어떻게 설명했을까? 불행하게도 1936년 이 성당 지하에 있었던 아틀리에가 습격을 받아 도면과 모형 등 수많은 자료가 불에 타버렸다. 1906년에 제자가 그린 완성 예상도가 남아 있는데, 이것에도 어떻게 짓겠다는 모습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을 뿐이다. 가우디의 사인이 있는 1902년의 스케치가 딱 한 장 남아 있는데, 이 그림에도 성당의 전체적인 형상과 볼륨이 아주 투박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니 1891년 ‘성 요셉 협회’ 회원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을 때도 분명히 이런 투박한 그림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기록이 없으므로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푸른 눈의 가우디는 아마도 협회 회원들 앞에서 이렇게 설득했을 것이다.

▲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기존의 지하 경당을 바탕으로 5개의 측랑을 두고 바깥쪽으로는 사각형의 대지를 따라 회랑을 두르겠습니다. 남쪽에는 탄생의 파사드를, 북쪽에는 수난의 파사드를, 서쪽에는 영광의 파사드를 만들 것입니다. 가장 높은 예수 그리스도의 탑은 172.5m입니다. 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만드신 몬주익 언덕(Montjuic Hill)보다는 낮습니다. 그 옆에는 130m의 성모 마리아 탑을, 또 그 옆에는 사복음사가의 탑을, 그리고 둘레에는 12사도의 종탑을 두는데, 미사를 드릴 때 여기에서 나는 종소리가 도시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예수의 탑 꼭대기 십자가에서는 네 개의 빛줄기가 밤하늘을 가로지를 것입니다. 빛의 십자가입니다. 12사도의 탑 꼭대기에서 하나는 예수의 탑을, 다른 하나는 땅을 비출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1만4000명이 미사에 참석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들이었다면 우리는 과연 이 말에 그들처럼 이 계획안에 동의해 줄 수 있었을까?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설에서 가장 깊이 생각해야 할 바는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건축가가 아무리 훌륭한 안을 제시하더라도 건축주의 동의가 없으면 건축물은 지어질 수 없다. 그래서 회화나 조각과 달리 건축에는 건축주(建築主)가 있다. 영리만 추구하는 건축주는 영리에 맞는 집을 설계해 줄 건축가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의 계획안에서 희망을 볼 줄 아는 건축주는 그 건물을 통해 사회에 미래와 희망을 남겨 주려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짓자고 결정해 준 ‘성 요셉 협회’ 사람들이다. (문화일보 7월4일자 28면 4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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