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核 폐기 없이 종전선언 매달리면 안보위협 자초할 뿐

북한이 핵 폐기 협상은 거부하며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호응하며 조기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비핵화 대화를 견인하기 위한 정치적 선언”이라면서 적극적 의미를 부여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형식과 시기를 열어놓은 상태로 당사국과 협의 중”이라고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지난주 미국 방문 역시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문 정부가 전방위로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형국이다.

북한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6∼7일 3차 방북 때 비핵화 대상의 신고 및 검증을 요구한 데 대해 ‘강도적 발상’이라고 반박한 뒤 종전선언에 집중하고 있다. 북 외무성 대변인은 7일 담화에서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첫 공정”이라고 했다. 이후 종전선언이 추진될 기미가 없자 노동신문은 25일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며 남측에 불만을 드러냈다.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부분 해체에 이어 평양 인근 미사일 조립시설 구조물 해체에 나선 것도 종전선언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적 제스처로 보인다.

북한이 요구한다고 해서 종전선언을 서두르는 것은 자기 함정에 빠지는 길이다. 비핵화를, 종전선언의 전제가 아니라 목표쯤으로 보는 강 장관의 주장은 선후(先後)와 본말(本末)을 뒤집은 궤변이다. 종전선언을 하면 정전체제를 관리해온 유엔사령부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고, 유엔사령관이 선포한 북방한계선(NLL)도 무력화될 수 있다.

종전선언을 정치적 선언으로 치부하면서 그저 북한에 선물 주듯 해선 안 된다. 북핵(北核) 폐기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선언을 강행하는 것은 스스로 안보 기반을 허무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장은 언제든 재건할 수 있지만, 종전선언은 한번 강행하면 되돌릴 수 없다. 북한이 비핵화 진정성을 보일 때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