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8.10.20 토요일
전광판
Hot Click
문화일반
[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7월 31일(火)
惡과 맞서는 도구 ‘理性’도… 제어 안되면 ‘괴물’낳는다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고야의 작품 ‘개’. 필자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개의 모습 위에 우리들이 보고 듣는 것 중에 많은 것이 헛것이라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 (20) 고야의 그림 두 점 <시리즈 끝>

1790년대 스페인 사회 대혼란
고야, 왕실 대신 일반인에 집중
1809년 나폴레옹에 정복된 뒤
민중 투쟁과 엄청난 참상 목격

‘理性의 잠은 괴물 낳는다’ 통해
인간 불행은 이성이 없어서인지
이성을 과하게 믿어서인지 질문

무언가에 현혹돼 응시하는 ‘개’
마치 화가의 시선 상징하는 듯

야만 · 괴물은 유별난 것 아니라
깨어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출현
우린 이성의 힘으로 싸우면서도
이성 자체의 악덕에도 부릅떠야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다가, 아니면 정신없이 글을 쓰다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불쑥 들 때가 있다. 말은 채워지지 않는 것인데, 글의 바람이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인데, 말과 글에 목을 매달고는, 이 글에 마치 생명이라도 담긴 것처럼 붙들고 있으니 이 무슨 어리석은 일인가? 유능하나 거들먹거리지 않고, 유머를 지닌 채 절제하는 사람들을 나는 좋아한다. 아마도 여기에는 엄청난 수련과 학습 외에도 선한 천성이 자리할 것이다. 그래서 원칙이나 기율 속에서도 자유로운 사고와 편견 없는 활달함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이럴 때면 자괴의 감정이 밀려든다. 그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간다. 커튼을 젖히거나 버티컬을 걷어 올리거나, 아니면 문을 조금 열어 밖의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쉰다. 그러고는 창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거리나 아파트 단지 안, 아니면 학교 인문대 앞쪽 안뜰 모습이 들어온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내가 보는 것은 헛것이 아닌가? 내가 쓰고 읽는 것들도, 머릿속 상념이 그러하듯이, 유령이나 허깨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럴 때면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고야(1746∼1828)의 ‘개’(1820년경)라는 그림이다.

# 고야의 그림 ‘개’

고야의 말년 그림들 가운데 기이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이 더러 있다. 그중 하나가 이 ‘개’라는 작품이다. 그림은 매우 단순하다. 화면에는 그저 개 한 마리가 보인다. 흙더미인지 벽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전면에 펼쳐져 있고, 개는 그 너머에 있다. 그래서 온전한 모습이 아니라 목만 보인다. 개는 목만 드러낸 채 오른쪽을 보고 있다. 그렇게 보이는 오른편에 얼룩 같은 것이 칠해져 있다. 어쩌면 또 하나의 벽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회갈색 화면 오른쪽 위에는 무슨 갈퀴 같은 얼룩도 보인다.

1810년과 1820년대 사이 스페인 사회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고, 왕당파와 자유주의자 사이의 싸움은 그치질 않았다. 고야는 개인을 옹호한 자유주의자로서 집단의 폭력과 국가의 권력남용을 비판했다. 1819년, 그러니까 73세라는 늘그막에 그가 시골의 별장 - ‘귀머거리의 집’으로 옮긴 것도 아마 현실의 소음과 정치적 박해를 피해서일 것이다. 그 뒤 그는 프랑스로 가서 보르도에서 살다가 죽는다. 이 귀머거리 집 벽에 그린 것이 저 유명한 ‘검은 그림들’ 연작이고, ‘개’는 그 그림 중의 하나다.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들은 그 후 캔버스로 옮겨졌고, 나중에 프라도 미술관 측에 건네졌다.

개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개는 알 수 없는 사물의 유령 같은 모습에 현혹돼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귀를 쫑긋거리며 응시한다. 개는 자기가 보는 것이 헛것임을 알고 있을까?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나의 은사는 얼마 전에 이렇게 얘기하셨다.

“우리 집에 개 두 마리가 있는데, 그중 한 마리는 집 안에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집 밖에 있어요. 그런데 손님이 우리 집에 올 때면 찻길을 올라와 골목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이 녀석들은 손님이 이 찻길을 따라 올라올 때 벌써 짖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 집에서 40~50m는 족히 떨어진 거리인데도 말이지요. 그러니까 개는 사람과는 다른 지각체계를 갖고 있는 겁니다. 사람이 보고 듣는 것 중 많은 것은 헛것이라고 말해야 할 겁니다.”

아마도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아둔하기에 사람이 하는 많은 일이 실수투성이에 과오와 악행으로 뒤덮여 있는지도 모른다.


#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역사의 끔찍함과 이 끔찍한 현실에서 학문과 예술이 가지는 책임을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다. 고야가 50세 무렵에 그린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이다. 이 그림은 80점으로 이뤄진 판화집 ‘변덕(Los Caprichos·1799)’ 가운데 43번째 작품으로, 회화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자주 해석되는 작품의 하나다.

화면 왼편에는 책상 같은 가구 하나가 놓여 있고, 이 책상 옆에 한 남자가 두 팔을 포개고 엎드려 있다. 고개 숙인 그 뒤편으로 여러 마리의 기괴한 날짐승이 허공을 어지럽게 날고 있다. 대개 박쥐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부엉이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이 남자의 허리춤에서 고개를 웅크린 채 정면을 바라보는 것은 고양이로 보인다. 그의 어깨와 머리 그리고 그 오른팔이 닿은 책상에는 서너 마리의 부엉이가 앉아 있다. 맨 왼편 부엉이는 펜을 들고, 마치 그에게 건네려는 듯, 이렇게 건네며 그를 깨우려는 듯이 보인다. 그가 앉은 의자 옆으로는 살쾡이 한 마리가 가만히 앉은 채 앞을 위협적인 눈빛으로 주시한다.

▲  고야의 판화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를 그리기 위한 스케치인 ‘보편적 언어’. 이성의 이중성에 대한 고야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남자가 기댄 책상 옆에는 바로 이 판화의 제목 -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가 적혀 있다. 스페인어 ‘수에노(sueno)’에는 두 가지 뜻 - ‘잠’과 ‘꿈’의 뜻이 들어있다. 만약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가 될 경우, 그것은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생겨난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에 반해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가 되면, 이것은 이성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다.

고야는 1790년대 중대한 위기를 겪는다. 이 무렵부터 그는 왕실과의 접촉을 점차 줄이면서 자기 자신에게 더 골몰하기 시작한다. 왕실화가로서의 공적 업무와 명성에의 욕망으로부터 자신의 삶에, 그리고 인간 일반의 현실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1792년에 앓았던 병이나 그로 인한 청력 상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또 알바 공작부인과의 사랑도-이것은 하나의 풍문이지만, 자리할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여러 점의 초상화와 판화에서도 확인된다.

1790년대 스페인 사회는 내적으로 온갖 미신과 편견과 악덕에 시달렸고, 외적으로는 프랑스의 간섭을 계속 받았다. 그러다가 1809년 나폴레옹 군대는 마드리드를 점령했고, 이들의 폭력에 대항하는 스페인 민중의 투쟁은 엄청난 참상을 야기한다.

연작 판화집인 ‘전쟁의 참상’은 이 무렵의 사회정치적 고통을 고야가 어떻게 생각했고, 얼마나 사실에 충실하게 표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사실적 묘사 때문에 종교재판소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한다. 잘 알려진 그림 ‘벌거벗은 마야’ 때문이었다. 그러나 종교재판소를 격분시킨 것은 이 그림만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변덕’ 시리즈의 많은 작품은 당시 교회 상층부의 악덕과 횡포를 가차 없는 진실성 속에서 증언하는 것이었다.

고야는 철저하게 근대적인 계몽화가였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어둡고 기괴하며 비합리적인 비전이 있었다. 그의 판화뿐만 아니라 많은 유화가 악귀나 미신 혹은 착란에 시달리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쟁의 참상’도 그렇지만, 말년에 그렸던 이른바 ‘검은 그림들’은 특히 그렇다.

고야의 이러한 계몽의식은 43번 판화를 그리기 위한 두 스케치 중의 하나인 ‘보편적 언어(Idioma universal·1797)’라는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이 작품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작가는 꿈꾼다. 그의 유일한 의도는 해로운 상투어를 몰아내고, 변덕의 이 작품으로 진리의 확고한 증언을 하는 일이다.”

필요한 것은 이성의 이중성에 대한 의식일 것이다. 즉 이성은 현실의 개선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적절하게 제어되지 않으면, 그것은 ‘괴물’을 낳는다. 이성은 이성 자체의 완전한 꿈에 대한 불신 속에서 비로소 올바로 자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에서 환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환상에 예술가가 압도돼 버린다면, 그는 무지와 악덕의 하수인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지난번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탁월한 과학자였음에도 독가스를 아무런 자책 없이 사용했던 하버의 삶에서 이미 확인되던 사실이었다. 또 100여 년 전의 고야가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를 그리면서 가졌던 문제의식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는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의 폭력과정을 보면서 과연 인간의 불행은 이성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이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 때문인지 계속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앞의 그림 ‘개’에 나오는 개는 아마도 화가의 시선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보이는 것에 골몰하고 집중하며 가시적 현상을 드러내는 예술가로서의 삶이다. 그렇게 드러난 회화적 형상을 우리(독자)는 응시한다. 아마도 우리가 보고 상상하는 형상의 많은 것들은 그런 유령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린 것을 느끼고 규명하는 인간의 감각이나 이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유령 같은 현실을 묘사해 놓고, 마치 그것이 실체인 것처럼 말하고 사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묘사된 것은 유령을 응시하는 개의 시선처럼 허망하고 눈먼다. 그러므로 이성의 과제는 지각작용의 이 근본적 맹목성을 잊지 않는 일일 것이다.


# 생각하는 삶의 책임 - 아렌트

죽음의 강제수용소에서 일했던 나치 군인들은 수용소 안에서 매일 1000∼2000구의 시체를 불태웠지만, 업무를 마치고 막사로 돌아와서는 난롯가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거나, 고향의 사람들에게 책임 있는 남편이나 착한 아들로서 편지를 쓰곤 했다. 수용소 밖의 관사로 돌아와 자상한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았다는 기록도 있다. 어떤 곳에서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추억어린 편지를 쓰면서도 다른 어떤 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가스실로 몰아넣고, 어떤 곳에서는 카드놀이를 하면서도 그 옆의 다른 곳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거나 그 금이빨을 빼서 모았다. 화기애애한 벽난로와 살과 뼈를 녹이는 시체소각장 사이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인간의 이성과 광기 사이도 그렇다.

우리는 이성의 힘으로 무지와 편견의 악덕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성 자체의 악덕에 대해서도 두 눈 부릅뜨고 응시해야 한다. 이성의 잠은 야만을 낳기 때문이다. 이성이 깨어나 있지 않다면, 현실은 언제든 폭력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이것을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불렀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실무책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 후에 있었던 전범재판에서 ‘왜 유대인을 학살했는가’라는 물음에, 자신은 “상부 명령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만 답했다. 이 재판에 참석했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것은 그가 ‘특별히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inability to think)”, 말하자면 이런 생각의 무능이 행동의 무능을 낳았다고 진단한 바 있다. 아이히만이 유죄인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책임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만이나 괴물은 현실의 유별난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깨어있지 않는다면, 언제든 출현할 수 있다. 악은 아렌트가 말한 대로 특이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흔하디흔한 방식으로 자리한다. 악이나 잔혹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그것은 생각 없는 곳이라면, 그래서 현실의 거짓과 참모습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 발생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이렇게 썼다. “전체주의적 지배의 이상적 주체는 확신에 찬 나치나 확신에 찬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차이, 참과 거짓의 차이를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를 몰고 가는 맹목적 힘들의 실체를, 그것이 시대의 ‘풍습’이든 ‘여론’이든 ‘시대정신’이든,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하는 일일 것이다. 인간이 세운 최선의 계획들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악의로 변질되는지, 모든 거창한 사회정치적 프로그램이 어떻게 파괴와 폭력의 그림자를 띠고 있는지를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이렇게 직시하고 묻고 돌아보지 못한다면, 현실의 다른 가능성은 더 이상 실현되기 어렵다. 생각이 없으면 악덕은 되풀이된다. 생각의 부재는 가능성의 부재다. 생각 없는 삶은 이미 있는 것 속에 자기를 가두는 일이요, 이런 자기 밀폐 속에서 굳은 채 스스로 죽어가는 일이다.

참으로 살고자 한다면, 살아서 진실로 자유롭고자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삶의 다른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다른 가능성을 억압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생각 없음이고,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는 자유와 행위의 보다 나은 가능성을 박탈한다.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고 철학의 일이기도 하다. 현실로부터 분리될 때, 예술은 자유를 파괴한다. 현실세계로부터의 소외는 서구 형이상학의 가장 큰 폐해이자 문화의 몰락이다.

지난 1년 동안 필자의 부족한 예술에세이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문화일보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문화일보 7월 10일자 25면 19 회 참조)

충북대 교수
[ 많이 본 기사 ]
▶ 文대통령, 아셈 정상회의 기념 촬영에 빠진 이유는…
▶ BTS, 유럽의 심장 파리서 한류팬들 심장 ‘완전저격’
▶ “여성, 특정 손가락에 ‘성적 취향’ 숨겨져 있다”
▶ 빗나간 욕망이 부른 참극…옛날에도 지금과 같더라
▶ 중국인 ‘때 밀어주는 사람’ 목욕탕 점령한 이유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topnew_title
topnews_photo 미국의 숫자맞추기 복권 메가밀리언 추첨에서 또다시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로써 당첨금이 미 복권 사상 최대 규모인 16억 달러(1조..
mark“내년 한국경제 ‘퍼펙트 스톰’ 올 것… 지식인들이 나서야”
mark“中, 숨겨진 부채 6500조원… 침몰 위험”
文대통령, 아셈 정상회의 기념 촬영에 빠진 이유는..
BTS, 유럽의 심장 파리서 한류팬들 심장 ‘완전저격..
아파트서 ‘트럼프’ 이름 떼고싶어…소송끝 간판 내..
line
special news ‘변화구 난타’ 류현진, 3이닝 5실점 ‘와르르’… P..
류현진(31·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팀의 월드시리즈(WS) 진출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한 판에서 초반..

line
북미정상회담 ‘1월1일 이후’ 거론··· 연내 종전선언 ..
비리 유치원에 뿔난 엄마들 도심 집회…“책임자 처..
인도서 달리던 열차가 축제 인파 덮쳐…“61명 이상..
photo_news
‘다이아’ 정채연, 몸살로 쓰러져 병원행
photo_news
하늘 나는 ‘에어 택시’, 내년 싱가포르서 시험 ..
line
[북리뷰]
illust
빗나간 욕망이 부른 참극…옛날에도 지금과 같더라
[인터넷 유머]
mark지혜로운 말 한마디 mark헌혈 못하는 이유
topnew_title
number “여성, 특정 손가락에 ‘성적 취향’ 숨겨져 있..
중국인 ‘때 밀어주는 사람’ 목욕탕 점령한 이..
트럼프 화형, 매티스·볼턴 교수형…度넘은 ‘..
우루과이, 성전환 수술 국비 지원… 성전환..
편의점서 여대생 흉기로 자해… “병원 치료..
hot_photo
‘빅뱅’ 승리 열애설 유혜원 누구?
hot_photo
10살 차는 가볍게…연상연하 커..
hot_photo
3억짜리 시계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최중홍)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