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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8년 07월 31일(火)
‘비누 조각가’ 신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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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내 근본적 관심은 남아 있는 것과 사라진 것의 경계에 있다.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사라진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상, 신라·고려·조선 시대의 불상(佛像)·청자·백자, 중국의 전통 도자기 등을 비누로 재현한 뒤, 시간의 흔적을 가미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비누 조각가’ 신미경(51)이 자신의 예술관을 표현한 말이다. 그는 “유물은 처음부터 유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유물이 되기까지 스펀지처럼 역사를 빨아들여 가치를 키우는 것은 시간이다”라고도 한다. 그래서 작품의 50%만 자신이 만들고, 나머지 50%는 풍화(風化) 등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유물과 재창작’ ‘특정 문화와 이에 대한 다른 문화의 번역’ 등의 간극(間隙)을 성찰하며 그 접점을 모색하는 그가 비누를 재료로 선택한 이유도 “비누는 닳거나 녹으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풍화된 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가 영국 런던대 슬레이드 미술대학원 유학 당시 벌인 ‘6개월간의 퍼포먼스’는 비누 조각가로 본격 출발하는 계기였다. 학교 건물 로비에 있던, 이탈리아 출신 에밀리오 산타렐리가 ‘미(美)의 여신(女神)’ 아프로디테를 조각한 대리석 작품과 똑같이 그가 비누로 만드는 과정부터 큰 화제였다. ‘고전을 독특한 현대미술로 변주한 창의적 걸작’ 등의 호평도 따랐다. 그 일은 대영박물관 로비에서 웅크린 자세의 비너스상(像)을 비누로 재현하며 자신의 얼굴 모양을 붙이는 퍼포먼스로도 이어졌다. 그 박물관의 한국관에 있던 조선 시대 명품 달항아리가 다른 행사를 위해 옮겨지고 없던 자리를 그의 비누 달항아리가 감쪽같이 채운 일도 ‘기념비적 사건’으로 남았다.

영국에서 활동하며 세계 미술계에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그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청 전시회 ‘사라지고도 존재하는’을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지난 5일 시작했다. 한국 공공미술관에선 처음인 그의 대규모 전시회로, 오는 9월 9일까지 이어진다. ‘번역’ ‘풍화’ ‘화석화된 시간’ 등이 주제인 대표 연작과 ‘폐허 풍경’ 등 최근 작품들을 그윽한 비누 향기 맡으며 감상할 수 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비너스’ 등의 비누 조각상을 만져 닳게 하는 ‘화장실 프로젝트’를 통해 작품 완성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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