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관함식 투표’는 안보 아마추어리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 국제정치학

외교·안보 정책 결정은 격조 높은 전략적 비전과 경륜 및 변화적응 능력을 필요로 한다. 국운을 좌우하는 외교 국방 정책들은 지방정부나 지역주민이 아닌, 중앙정부와 전문가 그룹이 국내외의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들을 신중히 검토·분석하고 대안들을 마련한 후 최종결정을 내리기 마련이다. 미국 경우에도 일반인들과 전문가들 간의 외교·안보 정책에 관한 견해차가 현저하다. 미국 내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의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협상에 대한 비관적 견해와 우려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한 국내 북한 전문가들의 입장은 상당수 일반시민의 긍정적·감정적 반응에 비해 훨씬 조심스럽고 점진적 접근을 선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관함식(觀艦式) 문제를 놓고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과 적지 않은 갈등을 겪어 온 정부가 찬반 주민투표를 거쳐 오는 10월 10∼14일 제주 해군기지에서 국제관함식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기이한 현상은 정부가 지난 25일 강정마을 주민투표 결과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택했다는 점이다. 강정마을회는 지난 28일 주민투표 참가자 449명 중 85.7%인 385명 찬성, 13.8%인 62표 반대, 무효 2표로 국제관함식을 수용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강정마을 발전과 주민을 위한 길’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1998년부터 10년마다 세 번째로 열리고 있는 ‘국제관함식’을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결정한다는 한심한 정부와 ‘강정마을 및 주민의 발전’만을 강조한 마을회 입장과 주민투표 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관함식 반대 입장을 고수하려는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 발표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정책결정자와 사회세력의 안보의식·안보문제 결정 과정이 이렇게 허점투성이며 근시안적이라면, 국가의 안보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한국의 안보역량과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몇 가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국가안보는 거시적·장기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둘째, 주민투표로 국가안보 사항을 결정하려는 지극히 소극적이고 위험한 발상과 시도는 사라져야 한다. 셋째, 제주도청과 강정마을은 진해와 부산에 이은 세 번째 소중한 국제관함식 기회를 홍보와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국제관함식은 우리의 전투태세와 군기사열은 물론 동맹국과 인근 국가들의 군함까지 초청해, 안보 협력을 도모하고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삼면이 바다인 해양국가 한국은 강정 해군기지같이 해군함정들과 대형 크루즈 선박들이 정박할 수 있는 수준급 사설을 보유해야 한다.

넷째, 안보 문제에서는 강정마을 주민들은 어느 정도 불편함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전방에 전개돼 있는 부대들과 대규모 군사훈련을 묵묵히 참고 견뎌온 경기도·강원도 주민들과 후방부대 및 비행장 주변 주민의 희생과 어려움도 동병상련(同病相憐)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심각한 대외적 안보 환경 악화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 국민은 내적으로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증진하려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끝으로, 문 정부의 외교 안보정책은, 제주 해군기지 ‘국제관함식’ 성사 과정에서 노정된 관함식 수용 대가 지불과 같은 포퓰리즘과 아마추어리즘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험난한 안보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 발전해나가기 위해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의 전략적 비전과 정책을 꾸준히 수립하고 재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