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돌볼 수 없다’ 휴가철 유기 집중… 작년 10만2593마리 버려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지난달 19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휴가철 유기동물 방지 캠페인’ 포스터 속 유기견. 어웨어는 동물 유기가 많아지는 추석 연휴까지 캠페인을 지속할 계획이다.

■ 반려동물 유기

고의땐 과태료 300만원…
입증 어려워 ‘버려도 처벌없다’ 만연

장기간 집 비울때 비정한 선택
개 7만·고양이 2만마리 거리로
동물보호센터 운영비 年155억

등록제시행…4년간 117만마리
인식칩 통한 소유자 추적 필요
“유기, 생명 죽이는것과 같은데
쓰레기 투기처럼 과태료 처분”

청와대‘토리’·효리네‘순심이’
유기동물 입양문화 확산 기여
공장형 사육시스템 사라져야
반려동물 사고파는 문화 개선

반려(伴侶)동물.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 박사가 1983년 제안한 단어 ‘컴패니언 애니멀(companion animal)’에서 유래한 단어다.

애완(愛玩)동물이란 표현이 동물을 사람의 ‘장난감’ ‘노리개’로 바라본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기존의 표현을 점차 대체하기 시작했다. 2008년 제정된 동물보호법 시행령에 ‘반려’라는 단어가 쓰이면서 시민 사이에서 확산했다. 하지만 휴가철마다 반복되는 ‘유기동물 대란’을 보면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아직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의 ‘반려’란 말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라지만 버려졌다가 구조되는 동물 수도 연 10여만 마리에 달한다. 동물 유기를 막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법적·제도적 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구조된 유실·유기동물 10만 마리 넘어, 여름철 집중 =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지난 6월 발표한 동물의 보호 및 복지관리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구조된 유실·유기동물은 10만2593마리에 달한다. 2015년 약 8만2100마리, 2016년 약 8만9700마리에 이어 14.3%나 늘었다. 동물 종류별로는 개 7만4300마리(72.5%), 고양이 2만7100마리(26.4%), 기타 1200마리(1.1%) 순으로 조사됐다. 지자체의 유실·유기동물 구조·보호 및 동물보호센터 운영 비용도 지난해 155억50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40억7000만 원(35.5%) 증가했다.

동물 유기는 휴가철과 명절 연휴에 집중된다. 가족 전체가 장기간 집을 비워 동물을 돌봐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책임감이 부족한 일부 주인이 손쉬운 해결책으로 유기를 선택하기 때문이다(문화일보 2017년 10월 16일 자 12면 참조). 지인에게 반려동물을 맡기기 어려울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으로 ‘애견 호텔’ 등이 있지만 비싼 가격이 부담스럽다. 실제로 지난해 유실·유기동물 10만2593마리 가운데 여름휴가가 집중되는 6∼8월에만 전체의 32.3%인 3만2384마리가 구조됐다. 7월이 1만1260마리로 가장 많았고, 8월도 1만1259마리나 됐다. 올해도 지난달 인천 지역에서 유기동물 신고가 20%가량 증가하는 등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의도치 않은 ‘동물 유실’도 = 고의적인 동물 유기뿐만 아니라 부주의·과실 등으로 인한 동물 유실 때문에 여름철에 유난히 유실·유기동물 수가 늘어난다는 시각도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전진경 상임이사는 “날씨가 더워지면 야외 활동이 많아지는 데다 집 문을 열어두는 경우가 많아 유실된 뒤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전 이사는 또 “고의적 유기에만 문제 제기가 주로 이뤄지다 보니 잠깐의 부주의로 동물이 평생 유기동물로 떠돌게 될 수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 유실의 경우 예방 방법은 고의적 유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전 이사는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에 반드시 반려동물을 등록해서 집을 잃은 경우에도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반려동물의 유기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2014년부터 반려견을 대상으로 하는 동물등록제를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지만,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전국 지자체에 등록된 동물은 117만5500마리에 머물고 있다. 전 이사는 “등록이 된 동물은 보호시설로 들어가더라도 바로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려동물 유실을 막는 또 하나의 수단은 목줄이다. 전 이사는 “목줄은 법적 의무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처벌은 미약, 이마저도 입증 어려워 =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을 유기한 소유자 등에게는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올해 3월 법이 개정되면서 종전 100만 원에서 3배로 뛰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액인 데다 형사처분인 벌금형이 아니라 행정처분인 과태료로 돼 있어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태료는 부과 주체가 지자체로, 지자체마다 동물보호 전담 인력이 부족하고 전담 부서가 있는 곳도 드물어 소유자가 동물을 고의로 유기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렵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현장에 나와 단속할 인력이 전혀 없는 상태”라며 “버린 사람만 있고 처벌받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한꺼번에 많은 수의 동물을 유기하더라도 부담해야 하는 과태료는 300만 원이 전부라는 점도 문제다. 전 이사는 “병아리를 한꺼번에 수백 마리 유기하더라도 300만 원만 부과되고, 그나마도 벌금이 아닌 과태료라 실제적인 법적 억제력이 없다”며 “동물 유기는 한 생명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데 쓰레기를 잘못 버리거나 잘못 주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과태료 처분만 받게 된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물 유기를 막기 위해선 반려동물 등록제의 완전한 정착이 필요하다”며 “외장 인식표는 떼서 버릴 수 있기에 내장형 생체인식 칩으로 소유자를 추적해 처벌하도록 하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기동물 ‘입양’ 문화 확산, ‘SNS 스타’ 된 유기견도 = 반려동물 문화에 ‘유기동물 급증’ 등 어두운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려견 등을 대량 생산·사육하는 ‘개 공장’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면서 유기동물 입양이 반려동물을 새 식구로 들이는 더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유명인들이 버려진 개와 고양이 등을 입양해 기르는 모습이 각종 매체에 보도되면서 유기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개선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동물권 보호단체 케어를 통해 반려견 ‘토리’를 입양했다. 전 주인으로부터 학대를 받던 토리는 2015년 10월 입양소에 입소해 치료를 받아왔고, 문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퍼스트 도그’가 됐다. 가수 이효리가 유기견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입양한 ‘순심이’도 이효리와 함께 각종 방송에 함께 등장하며 인기를 얻었다. 이효리는 순심이와 함께한 일상을 담은 수필집과 달력 등을 판매한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근본적 해결 위해선 ‘대량 생산·사육 시스템’ 극복해야 = 전문가들은 동물 유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려동물을 찍어내듯 길러 공급하는 공장형 사육 시스템이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 대표는 “반려동물을 너무 쉽게 사고파는 문화가 본질적 문제”라며 “해외 선진국들은 가게에서 동물을 함부로 사고팔지 못하기 때문에 전문 ‘브리더(breeder·사육자)’에게 분양을 받거나 보호소에서 입양한다”고 설명했다. 전 이사 역시 “한편에선 동물들이 대규모로 번식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많은 수가 죽어가고 있다”며 “사지 말고 입양하는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 부산=김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