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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8년 08월 02일(木)
혜은이도 꿈꾸던 ‘같이 사는 세상’…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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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파란 나라를 보았니

유사한 제목의 프로그램이 4개월이나 같은 시간(토요일 오후 8시)에 방송됐다. ‘같이 삽시다’vs‘같이 살래요’. 표절 시비가 안 붙은 건 KBS 1·2TV에서 나란히 방송됐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1일 시즌을 마감한 ‘같이 삽시다’는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평균 연령 63세 여배우들의 좌충우돌 동거 관찰 예능프로그램이다. 70대의 박원숙은 경치 좋고 인심 후한 남해에서 마음에 맞는 후배들과 ‘같이’ 산다. 어쩌면 한 편의 잘 꾸민 ‘쇼’ 같은데 구성이 자연스럽다(‘꾸민다’는 단어는 비호감의 동사로 굳어진 지 오래다. 시청자는 ‘꾸밈없는’ 언행을 좋아한다). 찾아온(초대된) 친구들이 1박 2일 추억을 방출하는 동안 눈물바다도 되고 웃음바다도 된다. 남해보다 그 바다가 더 깊고 푸르고, 시리다.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의 진솔한 고백은 고해(苦海)의 삶을 정화시켜 준다.

마지막 회 방문객은 가수 혜은이였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 예언한 대로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중략)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헤어진 딸이 서른 살이 되고서야 모녀가 재회했다는 고백은 놀랍고 슬펐다. 부산의 노래방에서 원곡가수가 ‘비가’를 부르는 동안(사진) 모두가 눈물로 한마음이 됐다. 고난의 유익함이 인증되는 순간이었다. 고난은 진정한 친구가 누군지 알려주고 그들을 손잡게 한다.

젊은 시절 혜은이와 부산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적이 있다. 새침할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쾌활했다. 나는 그의 노래 중 ‘파란 나라’를 애창한다. 노래 속 ‘파란 나라’에는 천사들이 산다. ‘꿈과 사랑이 가득하고/맑은 강물이 흐르는/울타리가 없는 나라’다. 하지만 ‘동화책 속에 있고/텔레비전에 있고/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봐도 없고/아는 사람도’ 없다.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어서/생각만 하는 나라’일 뿐이다.

옛 동료 교수로부터 청명한 하늘이 눈부신 캠퍼스 사진 몇 장을 SNS로 전해 받았다. “오늘 하늘이 하도 파래서 학교 사진 몇 장 찍었습니다.” 아, 우리가 ‘이화동산’이라고 부르던 언덕이다. 기억은 음률을 타고 현실의 세상과 연결된다. 그 겨울의 노랫소리가 폭풍처럼 몰려온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 ‘전해주고 싶어/슬픈 시간이 다 흩어진 후에야 들리지만/눈을 감고 느껴봐/움직이는 마음/너를 향한 내 눈빛을.’ 과거 ‘아침이슬’과 ‘상록수’로 저항하던 기성세대들은 ‘다시 만난 세계’의 간절한 외침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학교 망신으로 위축되려던 시각은 오히려 학생들이 주도해 낡은 세상을 바꾼 역사적 사건으로 시선의 창틀이 바뀌었다.

때마침 소녀시대 서현이 사진 공유 네트워크에 책 한 권을 올렸는데 제목이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은 이럴 때 쓰라고 생긴 말이다. 같이 삽시다, 파란 나라, 다시 만난 세계…. 다 ‘연결’되고 있지 않은가. 경북 봉화의 농부 전우익(1925∼2004)은 혼자만 잘살면 뭐가 좋으냐고 세상에 묻는다. 시인 신경림은 ‘깊은 산속의 약초’에 그의 삶을 비유했다.

공생, 상생의 가치를 평생 추구했던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은 ‘멈춰져 버린 시간’(‘다시 만난 세계’ 중)이었다.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간절한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좀 같이 삽시다.” 같이 좀 삽시다. 그 자리에서 남은 자들은 나직이 다짐했을 것이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이젠 안녕/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다시 만난 세계’ 중)

전우익의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세상 착하게 살려면 착함을 지킬 독함을 지켜야 한다.’ 천사로 살기 위해서 독사의 가면을 준비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독사는 밖에도 곁에도 있지만 실은 내 속에도 있다. 내 속에 있는 독사를 내보내야 천사랑 ‘같이’ 살 수 있다. ‘파란 나라’도 ‘다시 만난 세계’도 그 근방일 것이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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