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가난에 진학 포기했는데 직접 시험장 데려가… 보답하듯 교직 헌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용관(왼쪽) 스승과 그의 제자인 조상제(오른쪽) 퇴직 교사가 지난달 28일 부산 시내의 한 식당에서 만나 식사를 한 뒤 야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는 70년이 넘었지만 단둘이 찍은 사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조상제 씨 제공

조상제 퇴직 교사의 나를 만든 스승

“친구들 입학시험 보러가던 날
배웅하러 갔다가 선생님 만나
필기구에 숙소까지 마련해줘”

사범학교 졸업 45년 교편 잡아
스승의 날엔 빼놓지 않고 방문

‘어려운 사람 도우라’는 가르침
자녀·제자들에게도 늘 강조해

“70년 전 선생님이 제 손을 잡고 기차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그 길로 학교에 데려가 시험을 치게 해주지 않았더라면, 밥을 사주며 연필과 지우개를 제 손에 쥐여주시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제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조상제(84) 전 초등학교 교사는 70년 전 그의 스승 조용관(90) 선생님이 베푼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산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스승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걸었단다. 조상제 전 교사는 초등학교에서 45년간 교편을 잡고 1999년 은퇴했다.

그는 현직 교사일 때부터 은퇴한 지금까지 매년 스승의 날이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조용관 선생님을 찾아뵙는다. 지난달 28일엔 안부 인사를 전하고자 또 스승을 찾았다.

조상제 전 교사는 “벌써 알고 지낸 지 70년이 넘고 많은 세월을 함께했지만 한번 스승은 영원히 제 스승이기 때문에 요즘에도 자주 찾아뵙고 문안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스승과 옛날 추억을 회상하며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토록 돈독한 사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둘의 인연은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상제 전 교사는 중학교 진학을 고민하던 13세 학생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입학금을 마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집안에 여유가 있는 또래 친구들은 인근 진주중학교, 마산중학교, 마산상업학교에 진학하기로 했지만 저는 중학교 진학을 할지 말아야 할지조차 결정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죠. 결국, 약간의 보조금이라도 받으며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진주사범학교(당시 6년제 사범학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고 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는 일 같아 입학원서를 낸 사실을 떳떳이 밝히지 못했습니다.”

원서만 냈다고 끝난 건 아니었다. 당시엔 입학시험을 통과해야 진학할 수 있는 2차 관문이 남아 있었다. 조상제 전 교사는 전날까지도 시험을 치러 가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경남 진주로 시험을 치러 간다 하더라도 하룻밤 묵을 하숙집을 구할 형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래 친구들이 입학시험을 치기 위해 역으로 모여 갈 때도 부러운 눈으로 친구들을 배웅하기만 해야 했다. 만약 부모님을 설득해 시험을 치더라도 시험 당일 첫차를 타고 진주에 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군북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조용관 선생님이 그를 불렀다. “야! 상제야 왜 너는 기차 안 타냐?” 조용관 선생님은 머뭇거리던 조상제 학생의 손을 낚아채 기차에 태웠다.

“전 엉겁결에 돈 한 푼도 없이, 심지어 연필이나 지우개도 없이 기차를 타고 진주로 떠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도 간다는 말을 못하고 갔으니 요즘 같으면 크게 걱정할 법도 한데, 당시 부모님은 ‘어디 다녀왔냐, 시험 치고 왔냐’고 묻더니 별 말씀 없으셨습니다. 하하.”

기차에서 조상제 학생의 사정을 들은 조용관 선생님은 진주에 도착하자 본인의 친구 집에 학생을 데려갔다. 따뜻한 밥 한 끼를 사주고 하룻밤 묵을 수 있게 자리도 마련해줬다. 시험날 아침엔 필기도구까지 쥐여주며 시험을 잘 치도록 뒷바라지했다.

무사히 시험을 친 조상제 전 교사는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해 45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교직 생활을 마친 지금도 평생 조용관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고 있다. 훗날 그는 부모님을 통해 그날 기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다음 날 아침엔 폭우로 강물이 크게 불어나 기차가 출발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를 전해 들었다.

80대 중반인 제자와 90대인 스승은 만나면 서로 건강을 염려한다. 조상제 전 교사는 무더위가 계속되자 스승의 건강을 염려했다. 그는 “올해 여름이 1994년 이후 최고로 덥다고 하는데 스승이 이 더운 여름 잘 지내고 백수를 누리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날씨 얘기로 시작해 조상제 전 교사가 시험을 본 일부터 살아온 인생 얘기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둘 다 교직에 몸담았으며 한 시대를 살아간 인생 동료로서 나눌 얘기는 무궁무진하다. 이번 만남에선 당시 사범학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도 크게 노력하셨다는 얘기도 나왔다.

“스승 덕에 시험은 쳤지만 결국 부모님이 등록금 4만8000원을 마련하려 노력하셨죠. 그 돈을 마련하려 논 세 마지기인 600평 정도를 파셨어요. 근데도 돈이 부족해 결국 아버지께서 학교를 찾아가셨습니다. 당시 교장 선생님도 정말 감사하게 절 배려해주셔서 나중에 부족한 입학금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해주셨죠. 조용관 스승은 물론, 살면서 정말 많은 분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조상제 전 교사도 이런 가르침을 제자, 자녀들에게 늘 강조한다. 조용관 스승 역시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말씀하고 실천하셨듯 조상제 전 교사의 제자, 자녀도 사회복지사, 복지재단 등에서 남을 도우며 살고 있다.

“제가 최근에 한 제자의 퇴임식에 초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제자는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은 첫째로 부모님, 둘째로 배우자, 셋째로는 스승이라고 말하며 제게 감사를 표하더라고요. 제가 훌륭한 제자를 양성할 수 있었던 건 교직에서 늘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학생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고, 낮은 곳을 바라보라고 가르치신 조용관 스승 덕분입니다.”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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