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는 계몽주의와 反계몽주의의 투쟁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플리커’사이트 캡처

현대의 탄생 스콧 L. 몽고메리·대니얼 치롯 지음, 박중서 옮김／책세상

애덤 스미스, ‘시장’ 설파하고
마르크스, 사회주의체제 꿈꿔
자유·평등·진화·민주주의 등
4가지 핵심사상이 현대 형성

“사상이야말로 세계의 주인공
좋건 나쁘건 개념·상상 지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폭염에 이열치열. 도전의 심정으로 책을 폈다. 분량은 732쪽, 내용은 현대를 만든 핵심 사상의 전체 지도와 계보를 그리는 작업이다. 저자는 작가이자 지구과학자인 스콧 몽고메리 워싱턴대 부설 헨리 M 잭슨 국제연구대학원 교수와 역사학자 대니얼 치롯 워싱턴대 교수. 현대의 사상 지도를 그리겠다는 이들의 야심은 꽤 만만치 않다.

“사상이야말로 현대 세계를 만든 주인공이며 사상은 좋건 나쁘건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물론 상상까지 지배”하니 전 지구적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유라는 재료를 토대로 축조됐고, 우리는 주요 사상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사상에 의해 창조된 제도와 정치 시스템 아래서 살아간다고 이들은 말한다.

“군대의 침공에는 저항할 수 있어도 사상의 침공에는 저항할 수 없다.” 책 머리에 뽑아 놓은 빅토르 위고의 경구는 이들의 입장을 그대로 말해준다. 책의 전제이자 결론이기도 하다.

이들은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현대를 만든 네 가지 결정적 아이디어(핵심 사상)로 자유, 평등, 진화, 민주주의를 꼽는다. 각 아이디어를 대표하는 사상가는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찰스 다윈, 그리고 토머스 제퍼슨과 알렉산더 해밀턴에서 시작되는 미국 초기 민주주의자들이다. 책에 따르면 ‘현대의 발명가’들이다. 이들의 설명은 이렇다.

스미스를 언급하지 않고 현대 경제학의 출현과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야기할 수 없고, 이 시스템의 전복을 추구하는 혁명의 영감이 된 사상을 펼친 마르크스는 유토피아적 꿈만으로는 보편적 평등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했다. 찰스 다윈은 자연과 인간을 재정의하는 가운데 세속적 의미의 인간 역사를 가능케 했고, 미국의 건설 방식을 놓고 벌인 제퍼슨과 해밀턴의 논쟁은 현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공화국의 탄생, 그리고 그 과정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들의 사상은 단일한 개념·신념이 아니라 사회 경험의 모든 층위를 건드리는 사상 체계다.

특히 저자는 이 같은 ‘사상’을 ‘이데올로기’와 구분해 설명하는 데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 사상은 어마어마한 독창성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일련의 신념 체계와 프로그램들을 산출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라면, 이데올로기는 자기 지시적이고 심지어 거역할 수 없는 고정된 세계관이자 일종의 정신적 감옥이라고 한다.

책은 이미 널리 알려지고, 깊게 논의된 이들 사상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나 남다른 통찰을 발견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을 위해 쓴 책으로 새로운 학문적 통찰보다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이해와 해석에 주력한다. 현대의 네 발명가에 대해 이제까지 이뤄진 주목할 만한 분석, 저작, 학술 연구를 종합해 각 사상가의 삶을 훑고, 당대 지식의 전후 관계들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사상이 나왔고, 그 뒤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를 분석하며 지식의 종횡 계보를 그린다.

계보의 중심은 당연히 네 사상가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예를 들어 스미스를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너무나 강력한 대중적 상징에 가려진 스미스의 전모를 드러낸다. 스미스가 개인의 자기 이익 추구와 자유로운 시장질서가 경제 성장의 동력이라며 정부의 통제를 반대했지만, 동시에 빈민을 돕고 노동 계급을 향상시키는 등의 공공선에 정부가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 부분도 분명하게 설명한다.

한편 모두 계몽주의의 영토에 발을 딛고 있는 ‘계몽주의 후예들’인 이들의 사상은 18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우리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며 많은 추종자를 만들어 왔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적도 양산했다. 대표적인 적이 20세기 초에 절정을 이룬 파시즘과 종교적 반동인 기독교 근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다. 저자는 이를 자유주의와 과학을 거부한 ‘반계몽주의 사상’이라며 이 같은 반동적 움직임을 만든 이들도 역시 지식인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위대한 ‘현대의 발명가’처럼 이들도 책과 에세이, 연설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자유, 평등, 민주주의에 반하는 사상의 흐름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지난 300여 년간 인간의 역사는 ‘계몽주의’와 이에 반하는 ‘반계몽주의’의 투쟁이었다며, 이 투쟁은 미래에도 계속될 것으로 봤다.

이와 함께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처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도 기본적 자유의 실현은 여전히 큰 편차를 보이고, 다윈의 진화론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처절한 저항에 직면하는 등 이를 둘러싼 현실적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사상을 둘러싼 전선에서 선한 뜻이 이기기 위해서는 현대를 만든 사상의 씨줄과 날줄을 알아야 하는데, 결국 이 책을 쓴 목적으로 돌아오게 된다. 732쪽, 3만6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