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박찬호 “입문 3개월 70대打… 야구만큼 했으면 골프로도 성공했겠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찬호 KBO 국제홍보위원이 지난달 31일 충남 태안의 현대 더 링크스 골프장 B코스 출발에 앞서 드라이버를 활용해 몸을 풀고 있다.

박찬호 KBO 국제홍보위원

현역때 한번 스윙… 어깨 아파
은퇴 후 테드오에게 골프 배워
드라이버 300m…5번 220m
프로암대회서 1언더파 베스트
1년 훈련뒤 시니어 프로 도전

“야구는 이기려다 벽에 부딪혀
골프는 즐기며 칠 수있어 좋아
후배들도 내려놓는 법 익혀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던 박찬호(45) 한국야구위원회(KBO) 국제홍보위원은 현역시절 시속 150㎞를 뿌리던 강속구 투수였다. 그러나 이젠 300m를 보내는 장타 골퍼로 변신했다. 은퇴 후 취미로 골프를 배웠던 그는 프로골퍼 도전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물론 당장은 아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1년 정도 집중해 기량을 더 연마한 뒤 시니어대회에 출전할 작정이다.

지난달 31일 충남 태안의 현대솔라고 골프장에서 박찬호 위원을 만났다. 그는 때마침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2018 파워풀엑스 점프투어 14차전 우승자 문서형(19)에게 ‘챔피언 재킷’을 입혀주는 시상자로 참가했다. 박 위원은 ‘박찬호 크림’으로 널리 알려진 바르는 온열 크림 생산업체 ㈜파워풀엑스의 홍보모델로 짬을 내 지인들과 전날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이곳을 찾았다. 박 위원은 전날 40도를 육박하는 폭염 속 라운드에서 300m가 넘는 장타를 선보이며 이글 1개와 버디 2개를 뽑아냈다.

박 위원이 골프를 배운 것은 은퇴 직후. LA다저스 시절 동료 권유로 은퇴하기 전 골프채를 딱 한 번 잡아 봤지만, 다음 날 어깨가 아팠다. 그래서 골프를 위험한 스포츠로 여기고 멀리했다. 은퇴 후 재미교포 골퍼 테드 오(오태근)와 만나면서 골프를 본격적으로 익혔다. 테드 오는 아마추어 시절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호각세를 이뤘다. ‘천재 골퍼’로 불렸지만 프로 데뷔 이후 내리막을 걸으며 은퇴 기로에 서 있을 때였다. 박 위원은 테드 오의 멘털 및 피지컬 트레이닝을 자청했고, 테드 오는 박 위원에게 골프를 가르쳤다. 그 역시 7번 아이언으로 골프를 시작했지만 비거리만큼은 남달랐다. 우즈의 전성기 시절 헤드 스피드(125마일)와 비슷한 120마일을 자랑했다. 박 위원은 장타력을 앞세워 3개월 만에 70대 스코어에 진입했다. 물론 처음엔 100타를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늦게 시작했지만 하루에 700∼800개의 연습 공을 3시간 만에 뚝딱 해치울 만큼 적극적이었다. 1주일 동안 연습장을 다니고 몸살로 3일 동안 앓아눕기도 했다.

박 위원의 베스트 스코어는 1언더파. 한 기업이 한국에서 몇 해 전 주최한 프로암대회에서였다. 박 위원이 지금까지 언더파를 칠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보기나 더블보기로 주저앉곤 했다. 박 위원은 파 4홀에서 ‘원온’이 잦다. 드라이버로는 300m를 보내기에 오히려 손해를 많이 보는 편이어서 백 티에서 주로 치는 편이다. 최근에는 190m를 보냈던 5번 아이언 비거리가 정확해지면서 220m까지 보내기도 한다. 그린 주변 쇼트게임은 100야드 이내에서 주로 60도 웨지를 사용하는 편. 이글은 수없이 많이 작성했지만 홀인원은 아직 없다. 요즘엔 핸디캡 8을 놓는다는 박 위원은 백 티에서도 10번 중 2∼3번은 70대 스코어를 남긴다고 귀띔했다.

박 위원은 선수 시절 온열 크림을 사용하며 통증 완화와 빠른 피로해소 효과를 체험했고, 한국에 이 제품을 들여온 지인의 간곡한 부탁으로 홍보 모델을 맡았으며 자신의 초상권 사용을 허용했다. 한국에서 새로운 투자, 마케팅을 도입한 현재 경영진과 만나면서 본래 상품명 대신 ‘박찬호 크림’으로 알려지게 됐다. 그는 유소년 야구발전 기금을 모으기 위해 최근 홈쇼핑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박 위원은 야구와 골프를 조리 있게 비교하고 설명했다. 박 위원은 “야구선수였을 땐 늘 이기려다 보니 자주 벽에 부딪혔지만, 골프는 늘 웃으면서 즐기면서 할 수 있기에 너무 좋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 공을 치려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움직일 때가 많다. 골프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또 “골프나 야구 모두 자기 스윙대로 치면 되는데 힘이 들어간 탓에 걱정한 대로 가고 만다”면서 “(마음을) 내려놨을 때 자기 스윙이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위원은 현역시절 골프를 배우지 않았던 게 너무 아쉬워 후배 선수들에겐 골프를 적극 권장한다. 골프를 통해 부담을 내려놓고 즐기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박 위원은 선수 시절 슬럼프와 실패를 수없이 경험했다. 그래서인가, 박 위원은 “야구처럼 골프를 했다면 골프에서도 성공했을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 근거로 우선 장타를 날릴 수 있고, 지치지 않는 여전한 체력과 열정이 있으며, 어떤 방해요인 앞에서도 개의치 않는 멘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은 “골퍼들은 자신보다 (공을) 멀리 보내면 잘 치는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와 동반했던 아마추어, 프로선수 중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이가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박 위원은 “두 딸이 아빠를 닮아서인지 손 감각이 좋아 미술에 재능을 보인다”면서 “특히 얼마 전부터 골프를 시켰더니 몸을 움직이고 컨트롤하는 게 예사롭지 않고 기대 이상”이라고 자랑했다. 박 위원은 “아이들의 진로는 스스로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의 고문인 박 위원은 1년 중 9개월은 미국에 거주한다. 박 위원이 미국에서 야구 행정 업무를 배우는 건 구단 운영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3개월은 두 딸의 여름방학에 맞춰 가족과 함께 국내에서 보낸다. 그리고 박찬호 초등학교 야구대회를 비롯해 대전 리틀야구대회, 야구클리닉, 그리고 박찬호 재단 운영 등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충남 공주시 생가는 오는 10월 ‘박찬호 기념관’으로 탈바꿈한다.

21세이던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갔던 박 위원은 “메이저리그가 거대한 ‘야구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스포츠 경영과 행정이 체계적이었고 유망주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국야구도 ‘드림리그’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린 선수들을 더 많이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은 “좋은 열매가 맺어질 수 있도록 튼실한 뿌리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태안 = 글 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