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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8년 08월 03일(金)
더위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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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수천 년 우리 민족에게 더위는 인문학적 표현의 대상이기도 했다. 시기별로 첫더위·일더위·늦더위, 주야에 따라 낮더위·밤더위, 습기 유무에 따라 무더위·강더위로 나누었다. 초·중·말복 시즌에는 삼복더위·복더위 또는 복달더위라 하고, 심하면 된더위·불볕더위라 했으니, 그 체감형도 가마솥더위나 찜통더위 정도였다. 그래서 납량이나 피서로 점잖게 맞고 보냈다. 그 끝에 살인적 더위 같은 극단적 표현이 나왔고, 폭염주의보와 경보, 열대야라는 행정 용어가 등장했다. 더위가 본색을 드러내자 정치가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더위를 착한 이웃 정도로만 알고 지냈다.

윤동주는 시 ‘창공’에서 그 여름날의 더위를 ‘끓는 태양’이라 했다. 이글이글 화염을 내뿜는 태양은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계속 불탈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이 폭염(暴炎)을 ‘불볕더위’란 말로 순화했지만, 불더위까지 순치시키진 못했다. 절정의 여름 휴가철인 팔월 들어 서울의 한낮은 연일 40도를 위협받았다. 1907년 서울지역 기상관측 이래 최고기온은 맥없이 무너졌다. 강원도 횡성과 홍천은 더 높아 40도를 넘었다! 1500만 도나 된다는 태양의 중심부로부터 1억5000만㎞를 광속으로 날아온 수소 핵융합 불덩이의 위력이다.

옥탑방, 지하 셋방 할 것 없이 맹습하는 폭서(暴暑)를 선풍기나 부채로 맞서는 건 임파서블에 가깝다. 열사병이나 열탈진, 열경련 및 열실신 같은 온열질환자들이 여기저기서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지난 5월 20일부터 7월 31일까지 73일 동안 발생한 2355명의 온열환자 중 29명이 피안(彼岸)의 세계로 떠났다. 가축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양식장의 물고기들에 이어 닭·오리·메추라기 같은 가금류에서 돼지 같은 가축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마리가 열사병(熱死病)으로 폐사했다. 무·배추 같은 채소들도 말라죽어 상한가가 없단다. 사람도, 동식물도 더위 앞에 안식을 위협받고 있다.

더위와 서늘함을 염량(炎凉)이라던가. 세력의 성함과 쇠함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선악과 시비를 분별하는 슬기를 뜻하기도 한다. 나아가 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그게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인심을 비유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염량주의 정책일랑 단념하고 생살여탈권을 쥔 염서(炎暑)로부터 행복을 되찾아주기를 갈망하는 게 소박한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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