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숭어 한마리 놓고 더위 식히는 ‘천렵’… 조선시대 서민들의 여름나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득신, 천렵도, 18세기 지본담채, 32×35.8㎝, 간송미술관 소장

정조때 풍속화가 김득신 그려
농민·머슴·소년 생생한 모습
먹을 것 부실하지만 소박한 삶

‘덥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고기를 굽는 숯불 화로 위 석쇠에 올라앉은 기분이다.

1960∼1970년대 까지만 해도 이렇게 더운 삼복 중 눈에 익은 즐거운 풍경이 있었다. 바로 마음 맞는 친구들이나 형제들끼리 마을 어귀 냇가에 나가 그늘 가에 자리를 잡는다. 이내 윗옷을 벗어던지고 반라로 물에 들어간들 누가 나무랄쏘냐. 뜰채나 투망, 소쿠리, 어항, 족대 등의 도구를 갖고 모래무지나 빠가사리, 메기 등 민물고기를 잡아 둑에 솥을 걸고, 주변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 등으로 불을 지펴 얼큰하게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더위를 식히던 ‘천렵’이 그것이다.

현실에서 어렵다면 그림에서라도 천렵을 즐겨보자. 우리는 풍속화 하면 김홍도(1745∼1806?)와 신윤복(1758∼?)을 떠올리지만 실은 이 두 사람 외에도 많은 걸출한 풍속화가가 있다. 윤두서(1668∼1715)나 조영석(1686∼1761)이 있고 지금 보는 ‘천렵풍경’ 또는 ‘강상회음’이라 불리는 천렵도를 그린, 정조가 ‘김홍도와 백중지세’라 했던 김득신(1754∼1822)이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차림으로 보아 필시 남의 눈치 볼 것 없는 농사일에 지친 농민 아니면 대지주 집 머슴이 분명하다. 하나같이 고된일로 늙어 따가운 햇볕에 머리가 빠져 앞이마가 훤하다. 옷깃은 느슨하지만 차림새를 풀어헤치진 않았다. 화면 상단의 나뭇가지와 잎 그리고 아래쪽 풀들이 쉴 새 없이 흔들리고 누워 산들바람이 불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두 먹고 마시고, 어린 두 소년도 입맛을 다시며 어른들을 쳐다본다. 하지만 먹을 것에 관심이 없다는 듯 나무 아래 무릎깍지를 끼고 기대앉은 이는 초연히 멀리 바라본다. 뱃전에 기대 세운 낚싯대에는 찌꺼기라도 얻어먹을 셈으로 왜가리 다섯 마리가 날아들어 호시탐탐 틈만 노린다.

대개의 천렵이 소풍처럼 즐거운 것이었다. 하나 화면에 등장하는 여섯 사내와 두 어린이는 그렇게 즐겁지 않다. 배 위 삿자리로 지어 놓은 배 집까지 두고 나와 둘러 앉았지만 그날따라 고기가 영 안 잡힌 탓에 먹을 것이 영 부실하니 그럴만하다.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에 의하면 그림 속 생선은 모양으로 보아 숭어이며 그 모양이 부서지지 않아 소금을 넣고 쪄낸 숭어찜이라 한다. 하지만 입에 비해 너무 적은 양이다. 서로 눈치를 보느라 손을 대지 못하는 사이 용기 있는(?) 한 사람이 젓가락을 옮기고 있다. 흔한 김치 안주도 없이 잔을 들이켠다. 게다가 숭어라니. 숭어는 겨울에 제맛이 아니던가. 개도 안 먹는다는 여름 숭어, 그것도 달랑 하나 놓고 둘러앉아 낚싯대만 탓하며 조금은 소박한 천렵을 즐기고(?) 있다. 여름철 양반들의 보양식인 민어라도 한 마리 낚시에 꿰어주고 싶다. 그러나 부족하다고 해서, 고기를 못 잡았다고 해서 그들이 내내 심란한 것은 아니다. 물가에 나와 앉은 쉼만으로도 행복하다.

글은 상상해야 하지만 그림은 눈에 보이는 역사다. 특히 풍속화는 당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타임캡슐 같아 그림을 통해 조선 후기 상공업이 발달하고 중인 계급이 여항인이라 해서 중산층이 되던 정조 시절 들일을 하던 농민이나 서민들의 모습, 옷차림, 음식 등을 알려준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