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경찰이 만든 ‘감시대상 인물 카드’ 문화재 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의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에 붙어 있는 사진은 독립운동가 등 수감자의 고초를 느끼게 해 준다. 이들 사진 중엔 일반 국민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상당수 있다. 문화재청 제공

4858명 ‘불령선인’ 낙인 찍어
수감된 독립운동가 80% 차지

의병 거점 ‘완도 당사도 등대’
‘윤봉춘 일기’도 문화재 등록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수감 감옥이었던 서울 서대문형무소에는 15세 학생부터 72세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가 갇혔고, 같은 지역 주민들이나 한 가족이 수감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일제가 지목한 불령선인(不逞鮮人,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었고, 감시 대상에 올랐다가 결국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험난한 옥고를 치렀다. 형무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순국한 이도 적지 않았다.

일본 경찰이 독립운동가 등 ‘문제 인물’로 낙인 찍은 이들을 관리하고자 만든 카드 형태 기록물인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가 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항일독립유산인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를 비롯, 의병활동의 거점이었던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 항일 영화감독 윤봉춘의 제작일기인 ‘윤봉춘 일기’ 등 3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는 조선총독부의 감시 대상이었던 인물 4858명에 대한 신상카드다. 1910년부터 1940년대까지 경기도 경찰부 등 일제 경찰과 행형(行刑)기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 15㎝·세로 10㎝ 크기 카드에는 사진과 함께 안창호, 이봉창, 윤봉길, 김마리아, 유관순 등 일제에 항거한 독립 운동가들의 출생연월일, 출생지, 주소, 신장 등 개인 기본정보가 담겨 있다. 활동, 검거, 수형에 관한 사실들도 기록돼 있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들이 80% 이상이어서 ‘수형자 카드’ 또는 ‘독립운동가 신상기록카드’ 등으로도 학계에서는 불려 왔다.

박경목 서대문역사문화공원관장은 “감시카드를 자세히 살펴보면 10대부터 70대까지 전 연령층에 걸쳐 그리고 지식인과 농업 종사자 등 가리지 않고 온 국민이 독립운동에 참가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늦게나마 문화재로 지정돼 우리 독립운동 역사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파악된 4377명 중 20대가 2517명(57.5%)으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870명(19.8%)으로 뒤를 이었다. 15세 학생 11명을 포함해 10대도 462명(10.5%)이었고, 50대 이상도 196명(4.4%)이었다. 가장 고령은 72세였다. 직업도 학생, 교사, 기자부터 의사, 간호사, 마차꾼 그리고 농업 종사자까지 고르게 분포돼 있다. 문화재청은 등록을 예고한 3건에 대해 30일간의 등록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김종진 문화재청장은 “독립운동의 정신을 후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항일독립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 문화재 등록을 추진 중이고 지난해부터는 일제가 훼손한 안동 임청각의 원형 회복에도 집중하고 있다”며 “내년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항일독립유산들이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하고, 항일독립문화재 관련 특별전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