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혁명>ICT융합으로 맞춤형 상품 대량생산… 문제는 새 시스템 다룰 ‘사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브루흐살에 자리한 전기모터 제조 업체인 ‘SEW 유로드라이브(SEW EURODRIVE)’의 작업장에서 한 근로자가 정보기술(IT) 모듈시스템의 안내에 따라 모터를 조립하고 있다. 이 근로자는 수요자 맞춤형 모터를 생산하기 위해 모터마다 다르게 작업한다.

(3) 獨, 전통제조업 혁신 ‘산업 4.0’

IoT로 다양한 요구·수요 파악
모듈시스템 통해 다품종 생산
가상물리생산시스템·IoT 활용

단순 기계조작·조립·가공 넘어
ICT 연계‘노동 패러다임’ 변화

獨 노사공동‘러닝 팩토리’운영
급변하는 기술 운용·적응 훈련

‘탈산업화’가 경제 선진국을 의미하던 공식이 깨지고 있다.

또 한물간 산업으로 분류됐던 제조업이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재평가를 받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으로 제조업의 혁신을 통한 고부가가치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주요 경제 선진국들은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 발맞춰 적극적으로 제조업 혁신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2012년부터 제조강국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제조산업과 ICT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팩토리를 구현하는 산업 4.0 전략을 산학관 협력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스마트 제조전략, 일본은 산업재흥플랜, 중국은 7대 신성장산업으로 선두경쟁에 나섰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의 ‘노동 디지털화와 산업노동의 미래’ 연구를 수행한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와 함께 4차 산업혁명 산업구조조정의 붐을 촉발한 독일을 찾아 ‘산업 4.0’ 프로젝트가 일자리 혁신에 미친 의미를 분석하고 우리나라의 대응방안을 살펴봤다.

“산업 4.0은 ‘정보기술(IT)+생산기술’입니다. 단 모든 기술은 사람에 의해서 관장됩니다. 사람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시스템을 연결해 가치를 창출해내기 때문입니다.”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브루흐살. 전기모터 제조 업체 ‘SEW 유로드라이브(SEW EURODRIVE)’의 안드레아스 콜 매니저가 내린 평가다. 콜 매니저는 작업장에서 IT 모듈 시스템을 조작하며 매번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작업자를 예로 들어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두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듯 생산하는 기존의 자동화 공장과 달리, 이곳의 노동자들은 소비자의 각기 다른 요구에 따라 맞춤형 제품을 생산한다. 이 업체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와 수요파악이 가능해졌고, 모듈시스템을 통해 각기 다른 제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마트 공장’이다.

각 라인에는 IT 기술이 접목된 안내 시스템이 노동자들에게 각기 다른 조립방식 등을 설명했다. 이러한 시스템을 미리 숙지한 노동자들은 상황에 맞게 제품을 조작했다. 작업장 중앙에 있는 관리자는 3개의 모니터를 통해 공정별 작업량을 점검한다. 그는 생산량과 업무량 등을 분 단위로 관리한다. 현장 노동자들도 IT 기술을 활용한 숙련 기술이 필요하며, 관리자는 과거 마이스터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숙련도가 요구된다. 독일 산업 4.0 프로젝트는 IT 산업의 고도화에 따른 생산의 전면적 자동화, 기계화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제조업 경쟁력이 강한 독일 산업 4.0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맞춤형 생산(personalized production)을 겨냥한 기술과 시장의 결합이다. 이를 위해 기업과 노동조합은 물론 민간단체, 학계 등 사회 전반적으로 기술과 노동의 상호작용 및 직업 훈련을 크게 강조하고 있었다.

◇사람 주도, 산업 4.0의 혁신 = 미래의 산업 생산은 ICT 기술이 상호 통합됨에 따라 다품종 소생산을 넘어 소비자의 수요에 맞춘 개별화된 생산품 제작이 가능하게 됐다. 제품의 개별화된 생산은 가상물리생산시스템과 IoT 등을 통해 이뤄진다. 자원 효율성과 환경적 측면은 물론이고 공급망과 제품주기 조정 등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산업 4.0에서 사람은 변화의 중심이자 필수적 요인이다.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 간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인간의 정교한 수동 작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네트워크, 엔지니어링 업무, 시장화, 비즈니스 계획은 종합적으로 상호 조율이 필요하고 그 역할에 사람이 자리했다.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독일 금속노조 줄리아 프리드리히 매니저는 “예전에는 똑같은 기계를 만들어 팔기만 했는데, 지금은 많은 수요에 맞춰 변형시켜 제공한다”고 말했다.

◇진화와 숙련이 필요한 노동자 = 노동의 디지털화에서 나타나는 과정의 복잡성과 정보의 활용은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직무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지적 숙련’(intellectual skill)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독일에서 산업 4.0의 대표적 주창자 중의 한 명인 헤닝 카거만 독일 공학한림원장은 “미래의 노동자들은 단순한 ‘기계조작자’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 많은 전문가, 결정권자, 조정자와 같은 직무수행 역할 속에서 개별 노동자들의 다양한 직무 내용이 증가할 전망”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일자리는 단순 조립이나 가공 등의 업무 수준을 넘어서는 숙련도가 요구된다. 예측하지 못한 특수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행 시스템에서 노동자들의 숙련과 경험을 존중하는 노동이 생산조직에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숙련수준이 낮은 직무는 자동화에 의해 대치될 수밖에 없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에센에서 지역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하는 민간단체 캠프 에센(CAMP ESSEN)의 프랑크 알렉산더 로이시 정보기술담당은 “1990년대 이미 자동화가 진행된 이후 지금은 새로운 신기술을 어떻게 적용해 더 많은 이익을 내느냐가 관심”이라며 “결국은 노동의 숙련도가 얼마나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숙련 훈련과 교육 필요 = 독일은 노동자의 숙련도 향상을 위해 교육과 훈련을 강조한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보훔에는 400여 개 기업의 직장평의회(우리나라 노조와 유사)와 연결해 기술 및 제도 등을 배울 수 있는 숙련교육센터 ‘러닝 팩토리(Learning Factory)’가 있다. 이를 운영하는 반회 탭 보훔대 산업사회학과 교수는 “1970~1980년대 급속한 자동화가 진행될 당시 노조는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기술을 더 유용하게 사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배웠다”며 “향상 훈련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는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회 탭 교수는 “중앙 법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주에서 이런 법을 운용하며, 또는 금속노조의 단체협상에서 이런 합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서비스 노조 소속 마리온 다움 매니저는 “독일의 걱정은 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언젠가는 숙련노동자가 많이 부족하게 되는 일”이라며 “산업 4.0에서 독일의 장점인 전통적인 숙련노동이 없어지면 안 되는 만큼, 노동의 디지털화는 결국 숙련노동을 위해 기업이 협력하는 자세를 노조가 이끌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니엘 부어 튀빙겐대 정치학과 교수는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육, 직업훈련 등에서 협력하는 경제모델이 더 가치가 있다”며 “산업 4.0의 핵심은 기술 요인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으로 사회적 합의와 지원 등을 통해 어떻게 노동자의 숙련 정도를 확보해 주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보훔·에센·브루흐살=글·사진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