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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8년 08월 10일(金)
弱者를 테러하는 폭염은 ‘사회적 재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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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1일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도로의 모습이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는 앞으로 기후야말로 가장 사회학적 분석이 요구되는 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  시카고 폭염 당시 킨지 스트리트 다리의 철판이 늘어나지 않도록 물을 뿌리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 폭염사회 /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홍경탁 옮김 / 글항아리

23년전 발생한 ‘시카고 폭염’
체감 52도… 700명 목숨앗아

노인·빈민·고립계층 ‘희생자’
말 없고 눈에 안 띄는 사람들
흑인거주지역이 사망률 높아

‘자연 아닌 사회 문제’ 再정의
사람 살리는 건 결국 ‘공동체’


폭염 속 나온 ‘폭염사회학’이다. 책은 일주일 동안 7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5년 미국 시카고 폭염 재난을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례적인 날씨 탓이 아닌 거대한 ‘사회재난극’으로 봤다. 이 사회극의 주인공들은 개인의 인종, 경제적 지위, 사회적 환경, 공동체의 응집력, 정부 정책과 언론 등으로 책은 이들을 추적한다. 초판은 2002년에 나와 상찬을 받았는데 이번 번역본은 2015년 개정판이다. 버클리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 중에 폭염 재난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들어간 저자는 그 사이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가 됐고 개정판 서문을 통해 초판 이후 연구 결과와 이를 바라보는 관점들을 수록, 책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놓았다.

다만 10여 년 전 저작이기에 당시 저자가 충격적으로 발견한 1인 가구 급증과 고독사는 한국에서도 이미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재난의 최대 피해자가 사회적, 경제적 취약층이라는 분석도 꽤 짐작되는 바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자연재해라면 그저 날씨가 더워서, 또 날씨가 추워서, 혹은 불가항력적 이상기후로 벌어진 일이기에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 역시 날씨가 풀리고 재난이 복구되고 나면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는 우리를 흔들어 일깨워준다.

시작은 1995년 7월 12일 수요일 아침이다. 이날 ‘시카고 선타임스’는 시카고에 살인적인 폭염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목요일 기온은 41도까지 치솟았고 체감온도는 52도까지 올라갔다. 고층 건물의 실내 온도는 창문을 열어도 41도에 머물렀고, 수천 대의 자동차가 길 위에서 고장이 났고, 도로는 휘어졌다. 에어컨과 가정용 수영장은 바닥났고, 해안가엔 10만 명 가까운 사람이 몰려들었다. 곧 예측하지 못한 전기 사용으로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금요일 체감온도가 38도를 넘으면서 응급실과 입원실에 환자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일부 응급실은 병상이 모두 차서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더위로 쓰러지는 주민들이 늘어나더니, 토요일에는 평균보다 다섯 배 많은 365명이 사망했다. 7월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 동안 평소보다 739명이 더 많이 사망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들이다.

그 뒤 미국 해양대기청은 강한 고기압 상층부의 기압 마루와 매우 습한 대지라는 조건이 우연히 동시에 발생해 벌어진 이상 폭염으로 분석했고, 당국은 일주일간의 참사는 자연의 변덕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유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저자는 폭염이 환경적으로 발생했지만,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재난으로 봤다. 폭염이 홍수, 지진 같은 다른 재난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폭염 희생자들이 노인, 빈곤층, 고립된 계층 등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에 저자는 폭염 기간에 어떠한 제도적 장기가 고장 났는지 판단하기 위해 ‘사회적 부검’을 시도했다. 의학적 부검이 몸을 열어 사망의 직접적인 병리학적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사회적 해부는 도시의 사회적 기관들을 조사해 그해 수많은 시카고 주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조건을 파악하려는 작업이었다. 원자화된 개인과 깨지기 쉬운 가족, 빈곤 지역,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정부 기관, 근시안적인 언론 매체 등 그 분야 이론들이 제시하는 실패의 모든 원인을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고독사에서 출발해 피해자의 인종, 지역, 공동체를 살피고, 정부 대책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며 나아갔다. 16개월 동안 가난한 독거노인들과 시간을 보냈고, 6개월 동안 인종적·경제적 조건이 비슷하지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 두 지역을 상대로 정치인부터 경찰관, 지역 주민 등 수십 명을 만났다. 발로 뛴 사회학이다.

희생자는 주로 노인이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민족 인종 집단 중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 사망자의 지형도는 인종차별 및 불평등의 지형도와 대부분 일치했다.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인 지역 10곳 중 8곳이 사실상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사는 곳이었고, 빈곤과 폭력 범죄가 집중돼 있어 노인들이 집에 숨어 있는 위험을 무릅쓰다 폭염으로 혼자 사망했던 곳이다.

하지만 엥글우드와 오번 그레셤 두 지역은 모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99퍼센트이고 노인 주민의 비율도 비슷하며, 빈곤과 실업·폭력·범죄의 비율도 높았지만 사망자에서는 큰 차이가 났다. 엥글우드는 폭염 기간 중 주민 10만 명당 사망자가 33명이었지만 오번 그레셤의 사망률은 10만 명당 3명에 불과했다. 그 이유를 추적해보니 사회 하부 구조 즉 인도와 상점, 공공시설, 친구와 이웃 사이를 연결해주는 공동체 조직에 있었다. 흑인이거나 가난해서 더위에 취약했던 게 아니라 공동체가 방치한 게 원인이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많은 이를 죽음으로 내몬 여러 조건이 폭염 이후에도 계속되는 ‘일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말 없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폭염을 치명적으로 만든 ‘사회적 조건’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질 뿐이다.

따라서 기상이변이 발생했을 때, 다른 곳보다 회복력이 강한 지역과 취약한 지역의 환경을 조사하는 것은 사회학자들이 삶과 죽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사회학이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기후 재난이라고 했다.

결국 저자는 1995년 시카고 폭염에 대한 조사는 죽음을 연구해 삶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삶을 보호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희망으로 봤다. 한국은 폭염. 열대야와 전기료가 제일 큰 이슈가 된 지금, 이 책은 폭염 뒤에 자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472쪽, 2만2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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