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품 되지 않고… 주체적인 삶 살아가는 인어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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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소녀 / 도나 조 나폴리 글, 데이비드 위즈너 그림,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신화와 민담을 재해석한 작품을 써온 언어학자 도나 조 나폴리와 기발하고 대담한 상상력의 그림책 작가 데이비드 위즈너가 함께 만든 그래픽 노블이다. ‘인어 공주’가 아닌 ‘인어 소녀’로, ‘인어 공주’에 대한 완벽한 현대적 해석이다.

제목대로(원제는 ‘Fish Girl’이지만) 주인공은 바다 왕국의 인어 공주가 아니라, 인어 소녀이다. 소녀는 신분을 드러내는 거추장스러운 조개껍데기 장식 대신 티셔츠를 입는다. 공주가 아니니 당연히 공주의 운명을 쥐고 흔들 왕자도 없다. 그 대신 수족관에 갇혀 자기 운명을 알 길 없던 인어 소녀의 손을 잡아주고,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상대는 같은 또래의 소녀이다.

흔히 기존 이야기를 모티프로 변형한 이야기, 특히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이야기는 메시지에 중심을 두다 보면 재미가 떨어지기 쉬운데, ‘인어 소녀’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폴리의 스토리텔링은 뛰어나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화면을 구성해내는 위즈너의 그림은 환상적이다.

어느 해안가에 서 있는 3층짜리 붉은 건물, 수족관 오션 원더스. 이곳의 자랑거리는 ‘물속에서 숨을 쉬는 소녀’다. 스스로 바다의 왕 넵튠이라고 칭하는 주인은 오션 원더스엔 인어 소녀가 살고 있는데, 수줍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손님들을 끌어들인다. 거짓말은 아니다. 수족관에는 진짜 인어 소녀가 살고 있으니 말이다. 넵튠은 인어 소녀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슬쩍슬쩍 모습을 보여주도록 해, 손님의 호기심을 끌되 비밀은 유지한다. 넵튠은 인어 소녀에게 자신이 보호자이며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수족관 밖 세상에 대한 관심을 막는다. “사람에게 발각되면 실험실에 끌려가 실험을 당한다” “사람들은 너를 보면 혐오할 것”이라는 넵튠의 말은 언제나 소녀의 호기심을 무너뜨린다.

그러던 어느 날, 수족관을 찾은 한 소녀 리비아가 인어 소녀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리비아의 도움으로 수족관 밖으로 나오고, 땅에 나오면 인어 꼬리가 사라지고 다리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소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넵튠의 세계, 갇힌 수족관의 세계에서 벗어나, 존재의 자유를 얻는다. 인어 공주와 반대로 말을 할 수 없었던 소녀는, 땅 위에서 자기 목소리를 얻어 친구의 이름을 부른다. 물거품으로 사라진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는 170여 년 만에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인어 소녀로 우리 앞에 섰다. 192쪽, 2만2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