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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Fifty+ 게재 일자 : 2018년 08월 10일(金)
“잊지는 말아야지∼♪”… 靑春방송은 오늘도 ON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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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백영규(가운데) 씨가 지난 3일 인천의 한 LP음악카페에서 라디오 팬클럽 ‘백가마’ 회원들과 함께 최근 발매한 자신의 신곡 ‘술 한잔’을 열창하고 있다. 인천 = 신창섭 기자 bluesky@

백영규의 라디오 팬클럽 ‘백가마’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약칭
음악 신청하던 팬들이 만들어

대장암 수술뒤 투병 장연란씨
백씨 노래 들으며 병마 이겨내

아내와 팬클럽 가입 김창수씨
“방전 돼가던 삶에 큰 활력소”

말수 적고 조용하던 조인옥씨
“회원들 만난뒤 수다쟁이 됐죠”

‘소녀’로 불리는 80세 박정순씨
짙은 감수성은 회원들중 최고

“과거로 추억 여행 하는게 아닌
새로운 음악인생 즐기고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나요. 철없어 보일지 몰라도 이제 두 번째 ‘청춘’인걸요.” 흔히 말하는 7080 노래에 흠뻑 빠져 나이를 잊은 이들이 있다. 지금도 콤팩트디스크(CD)보다 빛바랜 엘피(LP)판을 더 좋아하고, 옛날 가요에 저마다의 추억을 보태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들이다. 생애 처음이었던 청춘을 너무도 아쉽게 보낸 터라 두 번째 청춘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후회 없이 살아보겠단다. 이들은 올해로 데뷔 40년 차인 백영규(66)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평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경인방송(FM 90.7㎒)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백가마)’에 주로 사연을 보내고 음악을 신청하다 오프라인 모임을 만든 백 씨의 라디오 팬클럽 ‘백가마’ 회원들이다. 두 달에 한 번 정기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회원만 36명이다.

한여름 폭염이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3일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비틀즈란 LP음악카페에 이들이 모였다.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아 전국 공연을 하는 백 씨의 일정에 맞춰 정기모임이 한 주 정도 앞당겨졌다. 급조된 일정이라 참석하지 못하는 회원이 많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일찌감치 예약석이 꽉 찼다.

◇열정 = “(백영규) 오빠 노래에는 잊지 못할 제 청춘이 있어요. 소녀시절 헤어진 남자친구가 보고 싶어 불렀던 오빠의 노래가 지금도 아련한 기억과 함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백가마의 5대 회장을 맡고 있는 장연란(65) 씨는 시장에서 장을 보다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백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헤어진 옛 애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 그날로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를 찾아 사연을 보냈다. 백 씨의 라디오 프로에서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 뒷자리 숫자인 ‘7879’로 불린다. “3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병석에 누워 있을 때도 오빠의 노래는 저에게 큰 힘이 됐어요.” 비록 라디오 프로에선 자신의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불리지만 그는 한 번도 서운하다 생각한 적이 없다. 전파를 통해 전해지는 백 씨의 목소리 이면에서 그가 누구보다 자신을 살뜰히 챙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 씨가 힘든 항암치료를 견뎌 냈을 때 성년이 된 딸은 ‘엄마의 친구가 돼 주셔서 감사하다’는 장문의 편지를 백 씨에게 보냈다.

인천에서 반평생 택시운전을 한 김창수(57) 씨도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면서 백 씨와 가까워졌다. ‘순이 생각’ ‘잊지는 말아야지’ 등 백 씨의 노래 몇 곡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 가수와 가깝게 지낸 건 백 씨가 처음이다. “택시기사가 운전대 다음으로 많이 만지작거리는 것이 라디오 볼륨입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영규 형 노래를 크게 틀어 따라 부르곤 합니다.” 김 씨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다. 두 달에 한 번 백가마의 오프라인 모임에도 빠지지 않는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오프라인 모임에 한 번 나오라는 제안에 “남자가 뭘…”하며 손사래 치던 그다. 가수 팬클럽은 젊은 여자들만 가는 줄 알았다는 그는 모임에 가장 열성적인 팬이 됐다. 항상 동갑내기 아내와 모임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는 그는 백 씨를 만나면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활동적이던 김 씨는 몇 해 전 운동을 하다 크게 다쳐 20년 넘게 활동해 오던 사회인야구를 그만둬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실의에 빠져 삶에 대한 자신감마저 잃어갈 때 백가마는 그에게 큰 위안이 됐다. 암을 극복한 장 씨처럼 김 씨 역시 백 씨의 라디오 프로를 통해 알게 된 모임에서 ‘힐링’의 차원을 넘어 열정 넘치는 청춘의 삶을 얻은 것이다.

▲  가수 백영규 씨의 팬클럽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그의 가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야유회를 가서 찍은 사진. 백가마 제공

◇사랑 = 백가마에서 닉네임 ‘나무자전거’로 불리는 조인옥(53) 씨는 원래 조용한 성격이었다. 혼자서 책 읽고 음악 듣는 것 외에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백가마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고부터는 그의 성격도 달라졌다. 말수도 많아졌고 남들과도 잘 어울리게 됐다. “같은 시대 같은 음악을 좋아했던 공감대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모두가 같은 삶을 살아온 것처럼 옛 노래의 가사가 한결같이 자기들 사연이라 우기기 일쑤니 말이에요.” 조 씨는 모임에서 벌어지는 이런 흔한 상황을 누구보다 재밌어했다. 그는 “모임에서 라디오에 올린 사연을 곱씹으며 얘기하는 것이 마치 친구들과 사랑방에 모여 밤새 수다 떨던 여고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나이 들어서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있게 마련이다. 조 씨에게 백가마는 단지 과거로의 추억여행이 아니라 지나간 청춘을 현재로 가져다주었다.

‘량이 천사’로 불리는 신경자(62) 씨도 백가마 청취자 사연에 자주 등장하는 애청자다.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한 지는 1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신 씨는 지금도 매일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나이 들어 마땅히 어울릴 친구도 없어 길에 버려진 고양이를 하나둘 돌보다 보니 그런 소리를 듣네요.” 신 씨는 길고양이 대모란 말 외에도 자신 때문에 동네 길고양이가 많아졌다는 주민의 항의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고양이에게 더 애정을 쏟았다. 그러던 그가 백가마 모임에 참여하고부터 고양이에게만 주던 정을 사람에게도 나눠 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신 씨는 이날 미리 준비한 오징어 회무침을 회원들에게 대접했다.

백 씨의 열성 팬 중에는 박정순(80) 씨를 빼놓을 수 없다. 팔순의 나이에도 ‘소녀’로 불리는 그는 지금도 백 씨의 프로에 소녀 같은 감수성 짙은 사연을 보낸다. 모임에도 빠지지 않는 그는 이날도 고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카페 정중앙에 앉아 백 씨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발광다이오드(LED) 손팻말을 흔들었다.

이들이 말하는 백가마의 소중함은 ‘사랑’이다. 소녀 때 부끄러워 말하지 못한 채 가슴속 깊이 숨겨야 했던 ‘사랑’을 백가마에 와서 맘껏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라디오 청취자에 머물렀던 팬클럽을 오프라인으로 끌고 나온 주인공은 백 씨의 오랜 친구이자 동생인 신민호(62) 씨다. 백 씨를 친형보다 더 아낀다는 그는 백 씨의 건강을 챙겨주고 싶어 팬들과 함께 정기산행을 제안했다. 백가마 오프라인 모임의 모티브가 된 ‘산자락’이란 모임도 그가 만들었다. “형(백영규)이 늘 얘기하죠. ‘팬들과 함께 산행하며 되찾은 것이 꼭 건강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입니다. 한때 잘나가던 스타였던 그가 팬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지내며 ‘백가마’란 가족이 생겼으니 당연한 거 아닐까요.”

두 번째 청춘을 살아가는 백가마 회원들 역시 백 씨처럼 20대 못지않은 ‘열정’과 ‘사랑’을 되찾았을 것이라고 신 씨는 말했다.

인천 = 지건태 기자 jus216@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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