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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8월 10일(金)
기술·속도·투지 실종된 韓國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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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금융위기 직후 한국 배우자던
일본 유수의 기업과 언론
지금 와선 “위협 상대도 못돼”

‘암반규제’깨 6重苦 해소하고
新산업 경쟁에서 앞서가는 日
규제혁신으로 반전 계기 삼아야


이런 시절도 있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세계로 약진하는 한국 기업에서 배우자’는 사설을 실었다. 이 신문이 내는 닛케이비즈니스는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를 ‘4대 천왕’으로 지칭하고 각 기업의 성장 비결을 집중 분석했다. 소니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제품·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했고, 토요타와 닛산은 현대차 차체를 뜯어가며 부품 성능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신일본제철은 포스코에 손을 내밀었다. 삼성전자엔 일본 기업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어깨너머 스승’이었던 일본 기업들이 자존심도 버리고 한국기업 벤치마킹에 나선 것이다. 그들이 배우려고 한 건 한국 기업 특유의 기술·스피드·도전정신이었다. 2010년의 일이다. 한국이 2008년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떨쳐내고 승승장구하던 시기다.

2018년, 상황은 다시 역전됐다. 지난달 니혼게이자이가 289개 자국 기업을 조사했더니 일본 기술력은 현재 5점 만점에 3.8, 10년 후엔 3.7이란 평가가 나왔다. 한국은 지금도, 10년 뒤에도 3.2였다. 중국은 3.4에서 4.3으로 급상승할 걸로 봤다. 중국의 미래 기술력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한국에 관한 한 지금도, 나중에도 한 수 밑으로 본 것이다. 현장에서 함께 뛰는 경쟁자의 냉정한 평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3월 코트라의 ‘4차 산업혁명 국제경쟁력 비교’에서 한국은 12개 신산업 전 분야에서 일본에 뒤졌다. 일본 경제가 살아나면서 완전 고용으로 구인난을 겪는 데 반해, 한국에선 고용참사 속에 구직난은 나아질 조짐이 없다.

일본 기업도 한때 6중고(重苦)에 시달렸다. 엔고, 높은 법인세, 자유무역협정(FTA) 지체, 노동규제, 환경규제, 비싼 전기료다. 특히 관료주의가 뿌리 깊은 일본의 ‘암반규제’는 유명했다. 웬만해선 꿈쩍도 안 한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주력 제조업이 한국에 밀린 원인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2년 집권 이후 경제단체와 합작해 암반규제를 깨질 때까지 두들겨 기업 환경을 바꿔놓았다. 사실 국내에 있는 대부분의 산업·금융·노동 규제는 일본이 원조다. 초창기 일본 법을 베끼면서 생겨난 규제가 많다. 원조국이 그걸 개선하는 동안 한국에선 거꾸로 악성 진화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아베노믹스에서 특히 돋보이는 건 4차 산업혁명을 대하는 자세다. 2015년 총리관저 지붕에 드론이 추락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지만, 규제보다는 시장을 더 키우는 쪽으로 정책을 세워 세계에서 가장 앞선, 드론 택배 서비스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국내에선 18년째 규제에 묶여 있는 원격의료의 선두주자가 일본이다. 2015년 원격의료를 전면 시행했고, 지금은 우체국 택배를 통해 집에서 의사 조제약을 받을 정도다. 한국이 ‘황우석 사태’ 후유증을 겪는 사이 일본 정부는 얼마 전 세계 최초로 유도만능줄기(iPS)세포를 활용한 파킨슨병 임상시험을 승인하면서 난치병 치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베는 이른바 ‘세 개의 화살’을 쏘아 경제를 이만큼 살려냈다. 국내에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기업들 사이에서 ‘세 개의 화살을 맞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규직화 압박이다. 아베 정부도 근로 환경을 개선하려는 정책을 집중적으로 펴왔지만, 그 방법론은 문 정부와 사뭇 다르다. 고용위기를 겪는 한국은 최저임금을 2년 새 29%나 올려 연 3% 인상에 그친 일본을 실수령액에서 앞지른 판이다. 일본은 최저임금 인상 때 생산성을 우선 따져보고, 지역·업종 등 차등적용으로 충격을 줄인다. 양국 모두 비슷한 시기에 근로시간 단축에 나섰지만, 일본은 탄력근로 여지를 충분히 제공해 분란이 없다.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 기업 특유의 역동성은 실종됐다. 그 특징은 고스란히 이웃 나라로 넘어간 느낌이다. 일본의 기술 인프라는 진작 정평이 나 있지만, 미래가 걸린 신산업 경쟁에서도 일본의 민첩성이 돋보인다. 일본 기업의 올 상반기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규모는 세계 전체의 29%에 달할 만큼 ‘야성적 충동’까지 갖췄다. 친(親)노조·반(反)기업 정책에 치인 한국 기업에 예전의 투지는 보이지 않는다. 성장 엔진이 죽으면 나라 경제도 죽는다. 10년 뒤를 생각하면 이건희 삼성 회장 말대로 등에 식은땀이 난다. 반전을 꾀할 유일한 무기가 규제혁신이다. 대한민국, 성장이냐 추락이냐. 문 대통령이 그 키를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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