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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8년 08월 10일(金)
큰 키 유전자가 있다고?…유전학의 과장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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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는 우리를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나
신간 ‘유전자는 우리를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나’

네덜란드인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다.

오늘날 네덜란드 남성의 평균 신장은 185㎝로 미국 남성보다 8㎝나 더 크다.

그렇다면 네덜란드인은 미국인보다 우세한 키 유전자를 가졌을까.

십중팔구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19세기 후반 네덜란드 남성의 평균 신장이 165㎝로 173㎝였던 미국 남성보다 8㎝나 작았던 걸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신간 ‘유전자는 우리를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나’(시그마북스 펴냄)는 개인 간의 형질 차이를 쉽게 유전자 탓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분석하면서 유전자 결정론의 허실을 파헤친다.

저자인 스티븐 하이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문화심리학 교수.

그는 사람들이 유전적 설명에 강한 설득력을 느끼는 것은 어떤 현상을 숨겨진 본질의 발현으로 믿고 싶어하는 뿌리 깊은 심리적 편향 때문이라는 주장을 편다.

무슨 무슨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식의 설명이 이런 본질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난제에 직면했을 때 인지 자원을 아끼기 위해 가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판단을 내리는데, 우리 일상 속의 유전자 결정론도 그런 편의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살이 찌는 것이 비만 유전자 때문이라는 기사를 읽은 학생들은 비만의 사회적 원인을 분석한 기사를 읽은 학생들보다 쿠키를 3분의 1가량 더 먹었다고 한다. 비만 유전자의 존재에 더 순응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여전히 유전자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유전적 운명론자다”라고 말한다.

키는 유전자에 대한 우리의 심리적 편향을 보여주는 예다.

우리는 키가 유전되기 때문에 이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키의 유전력은 실제로 80~90%에 이른다. 하지만 키를 결정하는 지배적인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근의 유전체 연관성 연구는 키에 연관된 유전자를 29만4천831개나 발견해냈다고 한다.

네덜란드인들의 키가 갑자기 커진 것은 생활 환경이나 습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9세기 후반 미국은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세계 3위였던 반면 네덜란드는 긴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인의 평균 신장이 미국에 크게 뒤졌던 이유다.

하지만 그 뒤 네덜란드는 경기가 회복되면서 식생활이 개선되고 키도 따라서 커졌다. 오늘날 네덜란드인의 평균 신장이 세계 정상에 오른 건 세계 1, 2위를 다투는 네덜란드인의 우유 섭취량과도 관련이 있다.

우유는 키와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일본의 경우 전후 국가 차원의 우유 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한 덕분에 몇십 년 사이 평균 신장이 10㎝나 커졌다.

그렇다면 정체된 미국인의 키는? 미국도 20세기 지속적인 경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식습관 때문에 키보다는 허리둘레가 커졌다. 물론 우유도 네덜란드인보다 덜 마셨다.

책은 같은 집단 내 개인 간의 키 차이는 유전적 영향을 받지만, 집단 간의 키 차이는 문화적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설명한다.

키는 유전자와 형질(표현형) 간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드러낸다.

19세기 그레고어 멘델이 실험한 완두콩처럼 특정 형질이 단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헌팅턴병이나 낭포성 섬유증 같은 희소병은 유전자의 예측력이 100%에 가깝고 유방암도 유전자와의 관련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형질은 키처럼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복잡한 상호관계망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표현형인데 여기엔 문화적 요소가 작용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심리적 편향 때문에 문화적 요소를 배제한 채 유전자의 영향력만 강조하는 유전학의 과장광고에 속기 쉽다고 지적한다. 또한 특정 형질이 특정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단선적 사고의 오류를 지적하며 이를 ‘스위치 사고’라고 명명한다.

20세기 전반기 무분별한 유전자 결정론이 우생학과 반인륜적 인종주의를 낳았던 흑역사를 상기시키며, 유전 정보에 결부되는 운명론적 태도와 본질주의적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하지만 스스로 편향적 사고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통제도 가능하다고 본다.

“본질주의적 반응이 언제나 해롭지만은 않다. 나는 ‘동성애 유전자’가 알려지면 동성애자의 권리에 더 포용적인 사회가 될 것이고 ‘우울증 유전자’가 알려지면 우울증 환자를 덜 비난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스위치 사고 편향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될 때만 의식적으로 본질주의적 사고를 누그러뜨리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가영 옮김. 408쪽. 1만8천원.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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