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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8년 08월 16일(木)
가수는 노래가 잊혀야 죽어… 조동진, 오래오래 살아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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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되어

언어에도 궁합이 있다. 소원하게 지내던 단어들이 인연을 맺으면 아름다운 시어가 된다. ‘인사하는 나무/너그러운 바다’. 채널을 돌리는데 갑자기 컬러가 흑백으로 전환된다. 소란스럽던 TV 화면이 명상노트로 변한다. KBS ‘국민의 마음’ 캠페인이다. 마침표, 물음표로 가득했던 세상이 쉼표, 말없음표로 바뀌는 순간이다. 순박한 미소, 낮은 목소리의 내레이터는 ‘효리네 민박’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사는 ‘노래하는 사람’ 장필순이다. 이효리와 장필순. 불일치의 요소가 많을 듯싶은데 고스란히 편견이었다. 부르는 노래가 다를 뿐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고, 자연 친화적 삶을 동경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무대 위의 효리는 ‘텐 미니츠’(10분)가 ‘내 것이 되는 시간’이길 바랐지만 시간은 소유하고 집행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란 걸 서서히 알아차린다. 오히려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마저 빼앗아/나를 상심하게 만들고’ 마침내 ‘가슴 시린 그런 기억조차도/모두 깨끗하게 잊어버린 무뎌진 사람’(장필순 ‘어느새’ 중)으로 만든다.

1980년대 ‘코러스의 여왕’ 장필순이 어느새 솔로 데뷔 30년을 맞았다. 이번에 나온 8번째 정규앨범 제목은 ‘soony eight - 소길화(花)’다. 제주 애월읍 소길리에서 피우는 ‘음악꽃’이 소길화다. ‘잃는 것이 많아지고 떠나보내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어 줄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우리는 그리운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부르고 싶은 대상을 노래로 부른다. ‘그대의 노래는 바람처럼/우리가 그리던 저 그림 속으로’(타이틀 곡 ‘그림’ 중).

여기서 ‘그대’는 지난해 8월 세상을 떠난 가수 조동진(사진)이다. 조동진과 장필순은 서로가 연관 검색어다. 둘은 어떻게 ‘연관’됐는가. 목소리가 자연을 닮았다. 얼굴 없는 가수, 그러나 영혼 있는 가수로 분류됐다. 둘의 노래는 우리를 달아오르게 하는 게 아니라 차분히 가라앉힌다. 노래교실에선 환영받지 못하겠지만 인생학교에선 교과서에 실릴 만하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폴 부르제). 이들의 노래는 삶을 되새김질하는 명상가요다.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는지/…그 빛은 언제나 눈앞에 있는데/우린 또 얼마나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지’(조동진 ‘나뭇잎 사이로’ 중)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묵상해보자. 우리는 왜 불행한가.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중)서다. 행복해지는 건 간단한데 간단해지기가 어렵다는 말을 굳이 책에서 찾을 이유는 없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아직도 남은 별 찾을 수 있는(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그렇게 아름다운 두 눈(그 마음)이 있으니’(‘행복한 사람’ 중). 조동진의 노래가 3분 남짓 해답을 준다.

28일은 조동진 1주기다. 그의 무덤엔 왠지 제비꽃 한 송이쯤 피어 있을 것 같다.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너는 아주 평화롭고/창 너머 먼 눈길/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제비꽃’ 중). 하지만 굳이 묘소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다. 그의 음악이 있는 곳이 그가 묻힌 곳이다. ‘부르지 말아요/마지막 노래를/마지막 그 순간은 또다시 시작인데’(‘다시 부르는 노래’ 중). 음악 동네에 죽은 사람은 없다. 노래가 불리지 않아 잊힌 사람이 있을 뿐이다.

간간이 들리는 제주발 뉴스가 근심을 불러온다. 10여 년 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제주 비자림로 주변 삼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다. 찻길을 넓히겠다고 산 나무들을 죽이다니. 조동진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나무다. ‘나뭇잎 사이로’ 좁다란 하늘과 파란 가로등을 바라보던 조동진의 마지막 노래 역시 ‘나무가 되어’(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수상)다. ‘나는 거기 다가갈 수 없으니/그대 너무 멀리 있지 않기를’. 그는 바라던 대로 나무가 됐으나 우리는 여전히 나무를 잘라내느라 분주하다.

나직한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나무는 우리에게 ‘나(我)무(無)’를 깨우쳐준다. 뭐가 그리 바쁜가. ‘나무가 되어/나무가 되어/끝이 없는 그리움도 흙 속으로’ 갈 터인데.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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