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낭만적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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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불볕과 호우·소나기 속에 맞은 어제 광복절은 새삼 ‘민족’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해준 날이었다. 먼저, 대통령의 경축사 한 대목. “우리 민족 모두가 함께 잘사는 날도 앞당겨질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본격적인 경제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면서 한 말이다. 이날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메아리도 ‘우리 민족’을 강조했다. 이 매체는, 판문점 선언은 미국의 ‘승인’을 전제로 나온 게 아니라면서 “북과 남의 우리 민족이 주인으로, 외세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풀어나가면 그만”이라고 했다. 발신지와 언급 주체 및 그 의미는 달라도 용어 ‘우리 민족’은 공통이다.

그러면 민족(民族)이란 무엇인가. 영어 네이션(nation)의 일본어 번역을 한자음으로 쓴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같은 지역·언어·생활양식·문화와 역사를 갖는 인간의 공동체나 집단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적 단위인 국민의 개념을 떠나, 피붙이라는 혈연에다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는 문화를 얹어 생각한다. 그 연장선에서 ‘우리 민족’이란 말은 남북한 전체 국민에다 해외 동포까지도 아우르는 의미로 쓴다. 학술적으로는 ‘낭만적 민족주의(romantic nationalism)’라고도 한다.

문제는, 이 낭만적 민족주의가 북한 주체사상의 이념적 뿌리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북한 헌법 제63조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와 같이 집단으로서의 민족을 유기체로 취급하고 전체주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위험한 것은 대북·통일정책뿐만 아니라 외교정책도 반(反)외세적으로, 특히 반미(反美) 경향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북한은 3대 세습독재와 인권유린, 핵·미사일 같은 정치적 약점을 감추고 흐리기 위한 전술로 걸핏하면 민족을 들고나온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민족의 대사’라고 하거나, 판문점 선언 이행을 외세의 눈치 보지 말고 ‘우리 민족끼리 원칙’에 따라 해결하자는 식이다.

이전과 달리 북한에서는 우리 민족을 ‘김일성민족’이라고 한단다. 그런 만큼 북한에서 우리 민족끼리라고 떠들면 ‘남북 통일전선 연대’라는 달콤한 속삭임임을 눈치채야 한다. ‘한 핏줄’이란 낭만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비록, 남북이 함께 쓰는 좋은 말일지라도 그 정확한 뜻을 알고 사용해야 저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