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北 비핵화의 주변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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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정치경제학

‘완전한 비핵화’ 선언 불구하고
디테일 수준 논의는 실종 상태
비핵화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

북한의 실질 조치가 가장 중요
연내 종전선언 얽매이지 말고
남·북·중 對 미국 구도 피해야

남북은 비핵화 정체 국면 타개를 위해 9월 중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미·북 역시 판문점에서 비밀 접촉을 계속하면서 핵 관련 리스트와 시간표 제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도 8·15 경축사를 통해 남북 경제 발전이 진정한 광복이라는 ‘평화경제론’을 제시하면서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종전선언·평화협정이라는 3대 과제 추진을 통해 평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당연히 이 모든 과정에서 완전한 비핵화가 핵심이며, 우리가 ‘주인’임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는 이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비핵화의 세부 논의가 실종됐다. 근본적으로 악마가 될 디테일조차 없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올해 초 남북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대치 상태를 개선할 극적인 계기를 마련했고,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판문점 선언을 내놨다. 한국의 중재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마주 앉은 미·북 정상 역시 북한 비핵화에 관한 선언적 합의로 한반도 평화 정착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그러나 현재까지 북한 비핵화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미국은 비핵화 초기 요구로 북한에 핵무기·시설 관련 리스트와 시간표를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미국에 대해 선(先) 종전선언 체결을 요구하면서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한국군 단독훈련 축소를 얻어낸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쇄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대 부분 폐기 등과 미군 유해 송환 등 비핵화와는 거리가 먼 전술로 미국의 진일보한 조치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4·27 판문점 선언에 따른 남북 경협 추진이 미온적이라며 연일 질책한다. 비핵화라는 본질이 초점을 잃고 ‘주변화(marginalization)’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따라서 반드시 ‘비핵화’라는 본질로 돌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 몇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북한은 남북 협력을 추동하는 시혜자처럼 행동하면서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를 압박할 게 아니라, 명분이 될 만한 구체적인 조치를 내놔야 한다. 지금까지의 북한 조치들은 미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중단이지, 현재의 핵이나 미사일에 대한 조치는 결코 아니다. 4·20 노동당 전체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발전 추진으로 노선을 수정하겠다고 했음에도 도당(道黨) 간부회의에서는 ‘핵은 고귀한 자산으로 없으면 죽음’이라면서 핵 폐기보다는 핵 동결이 목표임을 드러냈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로는 미국은 물론 한국도 설득할 수 없다.

다음으로, 연내 종전선언 추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종전선언이 구체적 비핵화의 출발점과 동력이 될 것이라는 인식과 의도에서 추진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그 이상의 파장이 잠복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나 유엔군사령부 해체,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나 군사 옵션 명분 소실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철수 등 한·미 동맹의 궁극적 역할 변화와도 연계돼 있다. 미국 입장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이들은 모두 중국에 유리한 요소들로, 미국의 동의가 쉽지 않다. 또, 장기적으로는 동북아 세력 균형과 직결되므로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미국 역시 대북정책 조정에 탄력성이 필요하다. 북한은 자신들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만, 여전히 선 비핵화 조치에는 미온적이다. 북한 설득에는 좀 더 세밀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북한의 핵 신고와 사찰을 설득하고 종전선언을 동시에 추진하는 빅딜설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설과 더불어 나오는 것은 일단 진전된 신호로 보인다.

문제는, 현재 우리 정부가 북한에 비해 불리한 협력 구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중국을 배후에 두고 미국과 대화하고 우리 정부와도 소통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대북정책 조율에 있어 대미 결속도가 떨어지고 대중 소통도 미흡하며, 북한으로부터도 남북 경협을 빌미로 압박 받고 있다. 남북 소통도 중요하지만 ‘완전한 비핵화’의 선행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우선하거나, 남·북·중이 연합해 미국을 압박하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 우리의 북한에 대한 분명하고 강력한 비핵화 조치 요구가 북(北)비핵화의 주변화를 피하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