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국민연금, 근본적 재설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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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5년마다 이뤄지는 국민연금 재정 점검과 제도 개편안이 발표된 후 그야말로 전 국민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국민이 기대하고 있는 정도로 정부가 충분히 숙고하고 준비하지 않았고, 국민연금의 주된 이해관계자인 청년층과 미래 세대의 의견을 경시하고 이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려다 이들의 강력한 반발에 당황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제도는 국민, 특히 젊은이들에게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금융과 재정 구조에 웬만한 지식이 있는 시민들이 보기에도 터무니없는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현재의 국민연금은 세대 간 공평성에 심각한 훼손을 가하는 형태로 설계돼 있다. 자신의 기여 대비 급부라는 수익비를 검토한 연구 결과들은 대체로 현세대의 경우 최소 1.4배에서 2.9배의 수익을, 어떤 조건에서는 4배까지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적립금이 고갈돼도 현재의 적립식 제도가 부과식 제도로 변경돼 별문제가 없을 거라지만, 지금처럼 연금 급부액이 정해져 있는 경우, 미래 세대가 기여한 부분에 부족분은 일반재정을 투입해 연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고, 이는 당시 정부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미래 세대는 당시 사회의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할 돈을 현세대의 노후 생활에 빼앗기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국민연금은 지속 가능성이 없고 조만간 대대적인 구조적 개편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입자들에겐 이런 점을 밝히지 않고 강제 가입하도록 한, 사실상 불완전판매 상품에 가깝다는 문제가 있다. 지나치게 낮은 보험료율, 지나치게 높은 수익비율로 잘못 설계된 제도로 인해 청년세대는 향후 현세대가 누리는 정도의 수익비율을 향유할 수 없다. 2057년 적립금이 고갈되는 즈음에 부과식으로 전환된 후 미래 세대들이 그다음 세대로부터 자신들이 전 세대를 부양한 만큼 부양받을 수 있을까. 미래 세대들은 현재의 저성장·고령화·저출산의 조건에서 당연히 현재 수준의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 점을 정부가 투명하게 미래 세대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기만의 문제다.

셋째,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경영과 관리의 합리성 측면에서 제대로 된 거버넌스 구조가 정립돼 있지 못하며, 국민이 보기에 다른 형태의 노후 준비 수단에 비해 효율적인 자산관리가 이뤄지지 못하다고 있다고 평가받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역량 있는 기금운용자를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임명을 막거나, 수익 외에 다양한 정치적인 고려를 하게 되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을 진행해 경제적인 관점에서 효율성이 우선되는 기금 운용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효과도 상충적인 중구난방의 개선안을 땜질식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세대 간 공평성, 지속 가능성, 기금 운용의 합리성이라는 관점에서 제도의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급부액을 낮춰 현세대의 수익비를 적정 수준으로 현실화하고, 스웨덴처럼 조기에 부과식으로 전환해 적립금 고갈을 지연시켜 일반재정 투입을 늦추고, 선진국의 사례와 같이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며, 다수의 기금 운용 주체로 구분해 경쟁하도록 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노후 준비에 국가에 손을 벌리기보다 먼저 자신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자기 책임의 원칙이 확립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임을 현 정부는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