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아의 에어 카페>폭염 속에 얼음의 땅으로 … 한 여름밤 꿈 같았던 비행

유례없는 폭염이 이어지며 잠 못 드는 열대야가 이어지던 여름이었다. 한국에서 8시간 떨어진 거리, 빙하와 오로라, 백야, 연어, 툰드라의 땅. 알래스카로 다녀온 것은 그 여름의 중심이었던 지난 7월이다. 정규취항이 아니라서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데다 때는 바야흐로 찌는듯한 여름. 계절과 공간, 시간을 너머 얼음의 땅을 만나고 올 행운이 주어진 것이다.

공항을 벗어나 숨을 크게 들이쉬자 청정한 공기가 폐를 감싸는 듯했다. 차가운 툰드라를 한 번 거쳐오는 공기는 태초부터 깊이 있는 신선함을 간직한 것 같았다. ‘이곳에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숨을 들이마시고 가야지.’ 도착한 첫날, 피로감에 몸을 뉘었는데, 밤 열 시가 넘어가도록 지지 않는 해가 창 언저리를 비추어 쉽게 잠들기 어려웠다. 산책하며 동네를 둘러보다 한 펍(pub)에 들어가 유명하다는 알래스카 맥주 앰버(amber)를 주문했다. 연한 오렌지빛이 감도는 맥주에서 은근한 단맛과 쌉쌀한 청량함이 느껴졌다.

다음 날 알래스카 여정에서 가장 기대됐던 빙하투어를 떠났다. 환경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요즘 언제까지 북극곰과 빙하를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라 생각하니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빙하와의 만남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우선 육로로 1시간 정도 이동했고, 바다에 도착해서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더 들어가니 알래스카의 연어가 점심 메뉴로 준비돼 있다고 했다. 배를 타고 마침내 만난 빙하에선 그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서늘한 냉기가 끼쳐왔다. 특유의 오묘한 푸른 빛은 수 천 년 동안 차근히 몸집을 유지하며 얼려 온 얼음의 밀도를 빛이 투과하지 못해 생긴 것이라고 한다. 내리는 비와 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빙하의 푸른 빛을 바라보았다. 오래도록 고대의 얼음이 녹지 않길 바라면서. 돌아오는 길, 작은 얼음 섬 사이로 수달들이 배를 드러내고 누워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모습을 보았고, 우리가 탄 배 주위를 맴돌다 슬쩍 등을 보여준 혹등고래를 꿈처럼 만났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푹푹 찌는 서울을 벗어나 서늘한 빙하의 땅을 만난 것, 해가 지지 않는 도시, 그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어서 한바탕 여름밤 꿈을 꾼 듯하다. 글을 쓰는 지금은 다시 여름의 더위와 싸우고 있지만 조용하고 청정한 이국의 바닷가 마을에서 보낸 3일의 시간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매일 아침 커피를 사 마시던 ‘미드나이트 선(midnight sun)’ 즉 ‘백야’라는 이름의 카페와 이누이트 족들의 생활상, 자연과의 사투를 담은 앵커리지 뮤지엄에서의 의미 있었던 시간도. 꼭 한 번은 가보시길 추천한다. 얼음의 땅 알래스카로.

대한항공 승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