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AI, 더 뒤처지면 낙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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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손정의 “AI가 미래 지배” 확신
국가·기업 기술패권 경쟁 치열
정부도 혁신성장 전략투자 밝혀

韓, AI 인력·제도 후진국 수준
리더층 인식 부족이 더 큰 문제
AI 승부수, 제도혁신 동반돼야

미래 기술에 관한 소식이 연일 충격적으로 전해지는 요즘이지만, 최근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의 메시지일 것이다. 그는 지난 7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월드 2018’ 행사에서 “AI가 인류 최대의 혁명이고, 모든 산업을 재정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논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인간과 24시간 일하는 AI는 경쟁이 안 된다.

게다가 AI는 인간 능력의 100배, 100만 배 성능으로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데이터를 분석하고 추론한다. 사람은 아는 얼굴을 봐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일이 많지만, AI는 20억 명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다. 24시간 이내 생사를 의사보다 더 정확히 예측한다. 물류는 시속 200㎞ 자율운전으로, 금융은 1초 만에 대출을 결정하는 핀테크로 바뀌고 있다. 40억 대의 스마트폰에 들어간 AI 칩이 세계 70억 명 사이에서 작동하고 있다. 손 회장의 결론 “온갖 산업과 서비스 능력이 AI의 힘으로 진화한다는 것은 곧 AI를 지배한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이다”.

1000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를 움직이는 투자가의 주장은 ‘촉’을 넘어선 확신이다. 4차 산업혁명의 모든 길은 이미 AI로 통하고 있다. 기업들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나라가 국가 차원에서 나서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이면에도 AI 기술 패권 다툼이 있다.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다. 물론 우리 정부도 최근에 복안을 내놨다.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안에 빅데이터와 AI를 앞세웠다. AI에만 향후 5년간 2조2000억 원을 투자하고, 관련 인재 5000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은 향후 3∼5년 동안 총 360조 원 안팎의 중장기 투자를 집행하는데, 역시 주력 부문은 AI 관련 산업이다. 반도체, 5세대(G) 통신, 디스플레이, 미래차 등의 성패가 AI에 달려 있다.

돈을 쏟아붓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문화일보의 ‘인간 진화와 AI 혁명’ 시리즈에서 전문가들의 진단은 그렇지 않다. 기술과 인력, 제도(규제)가 한 몸처럼 혁신해야 한단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민간위원인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는 “우리나라가 AI 강국으로 도약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의 전문 인력은 미국·중국에 비해 각각 20분의 1, 30분의 1 수준이다. 데이터 보유량은 세계 20위권이다. 기술 수준에서도 한국이 100이라면 미국은 110 이상이다. 5년 뒤에는 격차가 두 배 이상으로 커진단다. 중국은 현재 130 수준이고, 5년 뒤에는 140 수준이 된다. ‘IT 강국’을 자부해온 한국이다. AI와 연계된 반도체, 휴대전화, 통신, 가전 등에서 경쟁력이 있어 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냉정한 종합 평가는 AI 후진국이다.

더 큰 문제는 정책 당국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인식이란다. AI의 긍정적 비전보다 부정적인 여파를 부각하는 데 더 열을 올리는 경향이 많아서다. 국내 1세대 AI 연구자인 김진형 인공지능연구원장은 “사회지도자들이 AI, 인터넷, 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기술 전반에 관한 인식과 비전이 부족하다. 복잡한 과학 기술적 소양과 디지털 능력이 중요해지고 생활의 기본 덕목이 돼 가는데도 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독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지만 자율주행차 운행에 대비한 운전면허 발급, 자율주행차와 운전자 간 협업 문제 등 실질적인 차원에서 많이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말만 무성하지 실질적인 대책이 없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AI 석학인 스튜어트 러셀 UC버클리 교수는 “문명 발전의 책임을 기계에 넘겨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사회적 제도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얘기다. AI 기술로 일자리가 대체되는 것에 대한 걱정도 그 속에서 해소돼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AI에 승부수를 던진 참이다. 그 손뼉을 마주치는 일마다 ‘특혜 프레임’이라며 막아서는 일이 재연되면 또 실기(失機)한다. 손 회장의 마지막 일갈은 우리가 더 곱씹어 봐야 할 메시지다. “(AI 기술의 확산이) 2, 3년 빠르고 늦고는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AI 시대에 무서운 것은 한번 뒤떨어지면 다시는 선두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하루라도 일찍 하는 자가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