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 교수의 古典名句>處暑新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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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暑無三日 新凉直萬金 白頭更世事 草印心(처서무삼일 신량직만금 백두경세사 청초인선심)

처서 지나 며칠 되지 않았는데 새로운 시원함은 만금 같구나. 세사를 겪다 보니 흰머리 되었지만 고요한 마음에 새긴 것은 푸른 풀이라네.

송나라의 소형(蘇泂)이 지은 ‘장강이수(長江二首)’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제 곧 처서다. 처서에는 예부터 세 가지 징후가 있다 하는데, 매가 새로써 제사를 지내는 것, 천지에 숙살(肅殺)의 기운이 시작되는 것, 곡식이 익는 것이다. 매가 사냥한 새들을 펼쳐놓은 장면을 제사 지내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가을은 먼저 사나운 매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어 만물을 위축시키는 숙살의 기운이 펼쳐지니 번성하던 초목이 시들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곡식이 무르익는 것이다. 시인은 처서를 맞아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고 이어서 흰머리와 푸른 풀, 번잡한 세상사와 참선하는 마음을 대비시킨다. 오행에서 봄이 푸른색이라면 가을은 흰색이다. 인생의 계절 또한 마찬가지다. 따스한 청춘의 시기를 지나 무더위의 중장년을 겪고 서늘한 노년이 되면 자연스레 백발이 된다. 세상사를 겪으며 백발을 맞은 시인은 잠시 마음이 처연해지지만, 다시 참선하며 푸르른 기운을 새겨본다. 처서의 날씨보다 시인의 마음이 더 큰 시원함을 준다.

참선을 종지로 삼는 조계종이 요즈음 총무원장 문제로 세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물러나기로 한 사람이 끝까지 자기 사람 심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 무릇 종교란 청정함이 중요한데, 타락의 정도가 정치판보다 심하니 기가 막힌다. 선심을 앞세우면서 뒤로는 더러운 세사에 매달리고 있으니 이야말로 양두구육(羊頭狗肉) 아닌가. 작금의 무더위보다 더욱 답답한 일이다. 하루빨리 뭔가 시원함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상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