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혼란스러운 6가지 밥 딜런…그러나 ‘그는 거기에 없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임 낫 데어’의 주드 퀸.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딜런의 페르소나를 연기했다.

윤성은의 스크린 인물학 - (1)‘아임 낫 데어’의 밥 딜런

토드 헤인스 독창적 전기영화
여섯명 배우의 여섯개 캐릭터
중층 묘사로 현실적 인물 설명

저항하는 포크음악 가수부터
여자배우가 연기한 팝뮤지션
음유시인에 총잡이까지 다양

‘그를 규정하지 말라’ 메시지
가장 강조되는건 그의 작품뿐
음악 들으며 삶도 이해하게 돼

“나는 실제로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슴푸레한 안개를 응시하며 지적인 몽롱함 속에 떠도는 노래를 작곡하는 포크 뮤지션 이상의 사람이 아니었다.”(밥 딜런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 중에서)

2016년, 대중음악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77)은 사실 1960년대와 1980년대에 그랬듯 21세기에도 꽤 불친절한 공인이다. 그것은 데뷔 초반 팬들의 관심과 기대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딜런은 포크그룹 ‘위버스(The Weavers)’를 이끌었던 피트 시거의 영향하에 포크 가수는 공산주의자 혹은 사회운동가라는 맹신이 팽배했던 시절 등장했다. 그러나 그는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불렀음에도 스스로를 저항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존재로 규정되는 것도 기피했다. 그가 팝 역사에 새겨 넣은 명곡들의 리스트를 볼 때 위의 고백은 분명 지나친 겸손이다. 그러나 그를 향한 대중의 비상한 관심, 즉 ‘세대의 대변자’라는 꼬리표를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오직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은 뮤지션으로서 딜런은 이전까지와 다른 인식을 만들기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한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평범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어쩌면 그 두 가지는 처음부터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임 낫 데어’에서 잭 콜린스의 공연 모습으로, 딜런의 분신이다.

토드 헤인스 감독의 독창적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2007)는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헤인스는 이 영화에서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여섯 개의 캐릭터로 나누고, 여섯 명의 배우가 연기하도록 했다. 그 안에는 대중이 아는 딜런의 역사와 함께 그의 음악 및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도 있고, 그가 출연했던 영화 속 총잡이처럼 재가공된 인물도 있다. 그들 각자의 이야기가 어떤 연결고리도 없이 뒤섞이면서 흘러가는 이 영화는 딜런을 정말 알고 싶어 하는 관객들에게 일견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헤인스 감독은 정확히 그 점을 겨냥하며 자신이 태어난 해(1961)에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입성한 딜런에게 자신의 영화를 바친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처럼 여기에도 진짜 딜런은 없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림처럼, ‘영화의 반역’ 정도로 해석해야 할는지 모른다. 영화에 부제를 단다면 ‘이것은 전기 영화가 아니다’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는 파이프가 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았는가. ‘아임 낫 데어’에는 딜런과 관련된 실제 일화 몇 개와 상상적 페르소나, 픽션이 마구 뒤엉켜 있다.

여섯 개의 캐릭터 중 대중의 추앙을 받는 포크송 가수(잭 콜린스/크리스천 베일), 음악적 변화와 정치적 성향의 문제 때문에 변절자로 비난받는 뮤지션(주드 퀸/케이트 블란쳇) 등은 실제 대중이 알고 있는 딜런의 모습이다. 처음 그들 앞에 등장한 딜런의 모습은 뉴욕에서 부상하고 있었던 어번 포크계의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였다. 새로운 팝 음악, 특히 로큰롤에 굴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던 어번 포크는 196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는데, 딜런은 그 ‘불스 아이(bull’s eye)’에 있었다. 음악 저널리스트이자 영국 밴드 ‘세인트 에티엔’의 멤버인 밥 스탠리는 딜런의 인기 비결 중 하나로 포크 팬들이 ‘가공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만한 스타일과 움직임으로 자신을 꾸몄다는 점을 꼽는다.(‘모던 팝 스토리’, 북라이프) 또한, 미국의 음악학자 래리 스타와 음악인류학자인 크리스토퍼 워터먼은 딜런이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그의 창작곡들이 가진 놀라운 완성도와 고유한 연주 양식 때문이라고 말한다.(‘미국/대중음악’, 한울) 컨트리 음악의 투박함, 종종 공격적이라고 느낄 만큼 세게 내뱉는 창법, 재치 있는 가사 등은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딜런의 매력이다. ‘아임 낫 데어’는 그런 딜런의 모습, 즉 잭 콜린스를 보여줄 때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그의 음악이 왜 당대에 혁신적이었는지, 대단한 인기를 얻었는지 차근차근 소개한다. 딜런의 가사만큼 시적인 화법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이례적으로 친절하게 서술된 부분이다.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는 이 시기에 발표된 곡이다. 이 노래는 평화를 갈구하는 시적인 가사로 피터 폴 앤드 메리(Peter, Paul, and Mary)가 커버해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랐다. 당시 팬들은 그가 계속해서 이런 노래를 부르는 불멸의 포크송 가수로 남아주길 바랐을 것이다.

여러 평자가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잭 콜린스와 존 목사를 두 개의 인물로 상정하고 1인 2역이라 언급해왔지만, 사실 영화는 뉴스 리포터의 대사를 통해 잭 콜린스가 회심해 목사 안수를 받았음을 명시했다. 그러니까 베일은 목사가 된 스타, 한 사람을 연기했을 뿐이다. 열렬한 전도자로서 딜런의 삶은 비록 짧았으나 그의 가스펠 음반, ‘슬로 트레인 커밍(Slow Train Coming)’은 그래미상을 받을 만큼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그는 여전히 공연에서 자신의 가스펠 곡들을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존 목사는 딜런의 빼놓을 수 없는 분신이다.

‘아임 낫 데어’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인상적인 인물은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주드 퀸일 것이다. 여성 배우가 딜런의 페르소나를 연기했다는 점에서 먼저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 주드 퀸이 더 주목받았던 것은 그가 팬들의 기대와는 다른 노래와 인터뷰를 쏟아놓았던 시절의 딜런이기 때문이다. 1965년 초에 그는 ‘브링잉 잇 올 백 홈(Bringing It All Back Home)’이라는 다섯 번째 앨범을 내놓았는데 여기에는 일렉트릭 기타 및 드럼을 사용한 곡들이 포함돼 있었다. 딜런에게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그는 일렉트릭 밴드와 함께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참석해 포크팬들의 엄청난 야유를 받는다. 헤인스는 이 유명한 사건을 주드 퀸 밴드가 악기 케이스에서 기타 대신 기관총을 꺼내 관중을 향해 쏘는 다소 충격적인 블랙코미디로 묘사한다. 주드 퀸의 에피소드 중에는 1965년 영국 투어를 소상히 담은 D A 페네베이커 감독의 ‘돈 룩 백(Don’t Look Back)’(1967)을 재연한 부분이 눈에 띄는데, 어긋나는 기자회견과 인터뷰, 계속되는 갈등과 말다툼 속에서 지쳐가는 주드 퀸을 볼 수 있다. 팬들의 비난은 그의 음악이 상업화됐다는 것, 그와 동시에 저항정신에서 등을 돌렸다는 것으로 요약되지만 결과적으로 웃었던 것은 딜런이었다. 이후 많은 포크 아티스트는 딜런의 자취를 따라 일렉트릭 포크 음악의 세계에 입문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열한 살의 흑인 뮤지션으로 나오는 우디 거스리. 딜런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무엇보다 1965년과 1966년에 그가 발표한 곡들은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브링잉 잇 올 백 홈’에 수록된 ‘미스터 탬버린 맨(Mr.Tamberine Man)’이라는 곡은 탬버린 맨에게 현실의 무뎌진 육체와 고독, 슬픔, 속박에서 벗어나 다이아몬드 하늘 아래에서 손을 자유롭게 흔들며 춤출 수 있는 곳에 데려다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아름다운 노래는 그룹 버즈(Byrds)에 의해 커버돼 1965년 여름, 포크 록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등극한다. 같은 해 여름 녹음한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 역시 팝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싱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곡이다. 이 노래의 등장은 ‘길이, 주제의식, 시어의 사용에 관한 모든 제약에 종언을 고한’(‘미국/대중음악’) 하나의 사건이었다. ‘블로잉 인 더 윈드’의 문답법을 뒤집어 코러스에서 도전적인 질문을 반복해 던지는 이 곡은 한 여성이 특권층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장장 6분간 대서사시로 묘사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이야기도 음악도 완결되지 않은 페이드아웃으로 끝나므로 그 여운은 훨씬 길다.

열한 살의 흑인 뮤지션으로 등장하는 ‘우디 거스리’(마커스 칼 프랭클린)는 ‘디스 랜드 이즈 유어 랜드(This Land is Your Land)’라는 명곡을 부른 포크송 가수로, 딜런이 뉴욕에 오도록 만든 주인공이었을 만큼 그의 삶과 음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상당 부분 거스리에 대한 존경심으로 채워져 있다. 영화배우 ‘로비 클라크’(히스 레저)는 딜런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물로 등장하고, 샘 페킨파 감독의 ‘관계의 종말’(1973)의 주인공, ‘빌리 더 키드’(리처드 기어)는 정의에 앞장서는 은퇴한 총잡이로 등장한다. ‘관계의 종말’은 딜런이 음악을 맡고 출연까지 했던 작품인데, 에릭 클랩턴,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등 전설적인 가수들이 커버한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가 바로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곡이다. 마지막으로, ‘아임 낫 데어’는 음유시인으로서 딜런의 이미지를 ‘아르투르 랭보’(벤 위쇼)라는 이름에 투영시켰다. ‘블로잉 인 더 윈드’가 나왔을 때 뉴욕타임스가 딜런을 랭보와 비견한 이후, 평자들의 공공연한 인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글쎄, 왜 잭 케루악이나 앨런 긴즈버그가 아니었을까. 비트 제너레이션의 작가들에서 딜런을 발견하는 것이 19세기 프랑스 시인을 등장시키는 것보다 유의미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아임 낫 데어’는 주인공을 스테레오타입화 시키지 않으려는 시도로 새로운 전기 영화의 한 모델을 제시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딜런의 알쏭달쏭한 분신들 위에 그의 음악을 볼록판처럼 도드라지게 얹어 놓았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딜런이 지나온 삶을 보며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대신, 음악을 들으며 딜런의 정신세계를 유추하게 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문예지 ‘쿨투라’ 편집위원

스웨덴 한림원이 밥 딜런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목했을 때, 세상은 한참 동안이나 떠들썩했다. 그간 11개의 그래미상과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 주제가상, 퓰리처상을 받으며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명성을 떨쳤지만 노벨문학상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한림원 스스로 문학의 범위를 넓혔다는 의의 외에 딜런을 보는 시각에서 달라져야 할 것은 없다. 그의 가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이 곡 없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는지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부터 “음악인들은 내 곡이 가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늘 알고 있다”(‘바람만이 아는 대답’)고 자신한 바 있다. 낭설과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그는 노벨상 수상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영광’임을 공식적으로 밝힌 후 시상식에는 불참했다.

지난달(7월 27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있었던 밥 딜런의 공연 또한 그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이 공연에는 대형 스크린도 없고, 인사말도 없고, 심지어 관중이 알고 있는 노래도 없었다. 파격적인 편곡과 불분명한 발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가 딜런이었고, 그가 거기에 있었다. 관중은 두 시간 반 동안 새로 편곡된 스물한 곡의 노래를 들으며 그가 도전적인 뮤지션이라는 것 외에 어떤 수사도, 술어도 거부하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딜런은 자서전을 통해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 바 있지만 그 기도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딜런의 내한공연을 다시 보게 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에 관한 영화는 언젠가 반드시 또 만들어질 것이다. 그때는 어떤 형식이 될 것인가. 딜런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 ‘아임 낫 데어’의 성취는 거기까지 나아간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문예지 ‘쿨투라’ 편집위원

이번 주부터 윤성은의 ‘스크린 인물학’을 연재합니다. 방송 진행자로, 지면 매체의 필자로 성가를 높여온 중견 평론가 윤성은 씨가 영화 속에 비친 인물들을 새롭고도 다채롭게 조명할 것입니다. 연재 초반부는 인간의 영혼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음악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로부터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