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의 동네 집 이야기>스산한 고가 밑 판타지… 햇빛과 식물, 숲속 들어온 듯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을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는 ‘다락 옥수’ 내부. 평소에는 북 카페처럼 쓰이던 공간이 필요에 따라 공연장이나 전시장으로 바뀐다. 김종대 제공

‘다락 옥수’

옥수역 마주해 뛰어난 접근성
밤 9시까지 열어 직장인 배려

퇴근 시간 가족들 만남의 장소
학원 가는 길 잠시 쉬어가기도

평소엔 담소 나누는 북카페
필요따라 공연·전시장 변신

올 4월 지하철 옥수역 고가도로 하부에는 번쩍이는 지붕을 자랑하는 문화공간이 생겼다. ‘다리 밑에서 놀자’라는 부제를 가진 ‘다락(樂) 옥수’다. 약 50평 규모의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유휴 공간인 고가도로 밑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고가 밑 유휴 공간을 활용한 사례는 이곳이 처음은 아니다. 성북구의 ‘미인도’도 고가도로 밑 공간을 활용해 문화공간을 만든 사례다.(문화일보 2017년 8월 23일자 34면 참조) 국외를 포함하면 고가 하부를 활용해 유용한 공간을 만든 사례는 그 역사가 꽤 길다.

영국 런던의 웨스트웨이(Westway)는 1960년대 후반에 히스로공항과 도심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가도로다. 하지만 이 고가도로가 마을을 갈라놓고 차량의 소음과 분진이 문제가 되자 고통받던 주민들이 나섰다. 1971년, 웨스트웨이 개발신탁(Westway Development Trust)을 조직하고 고가도로 하부에 교육장, 스포츠클럽 등 주민들을 위한 시설을 조성했다.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는 20년간 사용하지 않던 고가철길을 1993년에 이르러 상부는 공원으로 꾸미고 하부는 갤러리와 공방,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곳은 훗날 뉴욕의 도시 폐철도를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Highline)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시재생이 새로운 도시 만들기의 대안으로 등장하면서 고가도로 하부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고가도로 하부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하나는 거주 환경에 좋지 않은 낙후된 공간을 개선하는 것이다. 고가도로 밑은 언제나 어두울 뿐만 아니라 그 어둠에 기댄 좋지 않은 행동들이 문제가 된다. 쓰레기 무단 투기가 대표적인 예다. 다른 하나는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비교적 넓은 공간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각 도시의 도시재생사업들을 살펴보면 마을공동체나 생활지원을 위한 시설이 주요사업인 경우가 많은데 공간 확보가 마땅치 않다. 도시재생이 필요한 낙후된 동네라면 빈집도 있기 마련이지만 대부분 비어 있는 공간은 접근성이 좋지 않아 공간의 생명력이 짧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4월 지하철 옥수역 고가도로 하부에 조성된 ‘다락 옥수’. 지하철 옥수역과 마주하고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김종대 제공

‘다락(樂) 옥수’는 지하철 옥수역과 마주하고 있어 접근성이 뛰어난 곳이다. 실제로 동네 주민들은 이곳에서 만나 지하철로 이동하거나 퇴근 시간에 가족들이 만나는 장소로 활용한다. 방과 후 학생들이 학원 가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락(樂) 옥수’의 접근성은 물리적인 조건만 충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간을 사용해도 좋을지 판단하고 다가가는 행위를 심리적 접근성이라고 하는데 ‘다락(樂) 옥수’를 덮고 있는 푸른 식물은 사람들의 경계심을 해제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욱이 이 푸른 식물들을 공중에 담아내는 지붕의 거울들은 한순간 숲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거친 나무기둥 역시 판타지를 위한 장치다. 내부 공간에서도 판타지는 계속된다. 경사진 천장을 따라 시선이 머무는 곳에 거울을 배경으로 작은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데 집광기를 통해 외부의 햇볕을 모아 식물들에게 뿌려지는 빛이 이 판타지의 절정을 그려낸다.

지역생활문화와 커뮤니티 공간을 지향하는 ‘다락(樂) 옥수’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문을 열고 이 판타지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 유사한 시설들에 비해 늦은 시간까지 열려 있는 까닭은 직장 때문에 이른 시간에는 사용할 수 없는 주민들을 배려한 결과다. 이곳에서는 따로 음료를 제공하지 않고, 인근 상점에서 사온 음료수의 반입을 허용하고 있다. 인근 상점과의 관계를 고려한 결정이라 생각된다.

내부 공간은 한눈에 파악되는 단순한 형태지만 공간의 사용에서는 유연성이 돋보인다. 평소에는 북카페처럼 쓰이던 공간이 필요에 따라 공연장이나 전시장으로 바뀐다. 규모가 작은 공간일수록 공간의 유연성은 중요하다. 현재 예측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용도를 수용하는 것이 다목적 공간이라면 유연성의 공간은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 미래 수요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공간의 유연성은 공간의 생명력과 관계가 깊다.

옥수역 고가 밑에 조성된 ‘다락(樂) 옥수’의 판타지는 서울시의 ‘고가 하부 공간 활용 종합계획’의 시범사업으로 시작됐다. 시범사업인 만큼 이후 사업 추진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때문에 ‘다락(樂) 옥수’를 덮고 있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주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다락(樂) 옥수’가 꿈꾸는 판타지의 결과는 주민들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