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이중섭 화백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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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한국에서 소의 이미지는 ‘우직하고, 착하며, 성실하고, 근면(勤勉)하다’는 것이다. 한집에 사는 하인처럼 사람으로 대접해 생구(生口)라고 일컫기도 했었다. 불교에서 소는 마음을 상징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승려 출신 독립운동가였던 만해(卍海) 한용운이 서울 성북동 집을 ‘심우장(尋牛莊)’으로 이름 지었던 것도, 불교 선화(禪畵) 중에 깨닫기까지 10단계 과정을 그린 십우도(十牛圖)가 있는 것도 다른 이유가 없다.

그런 소는 대향(大鄕) 이중섭(1916∼1956) 화백에게도 각별한 의미였다. “소의 커다란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저 행복했다”는 그는 ‘소’ ‘흰 소’ ‘움직이는 흰 소’ ‘황소’ ‘싸우는 소’ ‘소와 아이’ ‘소와 새와 게’ 등 소가 주제인 그림을 적잖게 그렸다. 그는 1951년 제주도 서귀포 피란 시절에 써서 남긴 유일한 시(詩) ‘소의 말’에선 이렇게 읊었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잡지 ‘문장’ 1940년 12월 호에는, 그의 소 그림을 두고 김환기 화백이 “쫓아오는 소, 외치는 소, 세기의 음향(音響)을 듣는 것 같다. 응시하는 소의 눈동자는 아름다운 애련(哀戀)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6·25전쟁으로 대구에 피란해 있던 이중섭이 그곳의 미국 공보원에서 개인전을 갖기 위해, 당시 공보원장 맥 타거트에게 소 그림을 보여줬다가 크게 상심한 일화도 전해온다. “훌륭하다. 감동했다. 힘이 넘치는 황소는 스페인 투우를 그린 것 같다”며 작품을 사고 싶다고 한 그에게 “내 그림은 스페인 소가 아닌, 착하고, 고생하는 한국의 소”라며 판매를 거부하고 집에 돌아가 며칠 동안 울며 지냈다고 한다. 공보원장은 결국 이중섭 모르게 다른 사람을 통해 그 그림을 샀다고 한다.

서귀포시의 이중섭미술관은 기획전 ‘소,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난 7월 3일 시작해, 오는 10월 7일까지 이어간다. 지난 3월 경매에서 47억 원에 낙찰된 ‘소’를 비롯, 소가 주제·소재인 이중섭 작품 20점을 제주 지역 화가 12명의 그림과 함께 선보였다. 인간적·감성적 이미지를 지닌 한국 소의 예술적 승화 앞에 서면, 누구나 가슴이 뭉클하면서 아릿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