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조영남 代作 사건의 씁쓸함… 언제까지 법정서 가려야 하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루벤스와 제자들이 함께 그린 ‘영아학살’(Le Massacre des Innocents), 목판에 유화 162.5×234cm, 1611~1612, 벨기에 왕립미술관 소장.

미술계가 관습 차원서 다룰 일
세계적 거장들도 조수 두지만
미학적인 동시에 양심의 문제

성인 남녀의 잠자리 문제까지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세상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법정에서 가려야 하는 것일까. 관습법이라 했던가? 사실 이번 조영남의 대작 사건은 미술계가 관습법 차원에서 다뤄야 할 일이지 실정법 차원에서 다룰 일은 아니었다. 미술사에서 이런 대작 시비가 법정에 간 예는 없다. 왜냐면 이는 미술을 어떻게 보느냐, 해당 작품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마음, 생각, 양심의 문제다. 가치관을 법으로 심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미켈란젤로(1475∼1564)에게도 조수가 있었다. 화가면서 외교관으로 생애에 걸쳐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던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도 연구자인 미첼 야페(1923∼1997)에 의하면 생전에 1403점의 작품을 남겼으나 이는 작업실에서 조수들과 함께 그린 것이 포함된 것이다. 프랑수아 오귀스트 르네 로댕(1840∼1917)의 경우도 에밀 앙투안 부르델(1861∼1929)이나 카미유 클로델(1864∼1943)같은 걸출한 조각가들을 조수로 뒀고 그들이 로댕을 도와 함께 작업했다. 로댕은 클로델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비난도 받지만 이를 두고 대작이라고 하진 않는다.

역시 작품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과정을 누가 주도했는지가 관건이다. 이 시절 미술계 관행은 조수가 있다고 해도 원저자가 작품 제작과정을 전체적으로 관장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 대가인 스승의 작품에 자신이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작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해 임금도 고정급이 아니라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며 용돈이나 받는 정도였다. 즉 이 시절 조수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아닌 스승과 제자라는 점이다.

마르셀 뒤샹(1887∼1968) 때문에 결국 사달이 났다. “현대미술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신만 빠져나간 다음 출구를 막아버렸다”는 악동 뒤샹이 건자재 가게에서 남성용 소변기를 사서 ‘샘’(1917)이라는 제목을 붙여 출품하면서 통상의 미술사를 뒤집어버렸다. 그는 우상이 돼버린 그림을 대하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에 ‘똥침’을 날렸다. 미를 욕보인 것이다. 작가가 직접 그리고 만들지 않고 뭔가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되는 세상이 됐다.

이후 앤디 워홀(1928∼1987)은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이라고 부르며 ‘유일함’을 무기로 ‘절대적’인 미술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워홀과 일한 이들은 제자이기 전에 임금을 받는 조수였다. 니키 드 생팔(1930∼2002)의 경우 세상을 떠난 뒤 2003년 하노버에 그녀가 남긴 계획서를 토대로 ‘작은 동굴’, 캘리포니아에 ‘여왕’이 완성됐다. 이렇게 현대미술에서는 작가가 죽어도 개념만 구현하면 작품이 된다. 하지만 뒤샹 이전에는 아이디어보다 이를 구현할 테크닉을 더 중시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어디에 비중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유죄라고 판결한 1심은 조영남의 ‘화투’를 아틀리에에서 제작된 ‘그림’이라고 봐 남을 시켜 그린 것을 자신이 그린 양 판매했다는 취지로 ‘사기’라고 했고, 2심은 그의 ‘화투’가 테크닉보다 아이디어, 즉 개념이 중하다고 봐 무죄를 선고했을 터이다. 물론 조수를 쓰는 것은 관행이란 변명이 많은 ‘화가’를 화나게 했고 비난을 자초해 일은 더 꼬였다.

작가가 제작 공간을 칭할 때 전통적 타블로, 즉 평면회화를 하는 경우 통상 아틀리에나 화실, 개념을 중시하는 경우 작업실 또는 스튜디오라고 부른다. 따라서 평소 그가 작품을 ‘그리거나 만드는’ 장소를 화실, 아틀리에라고 했다면 자신의 화투를 ‘그림’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봐 유죄고, 작업실 또는 스튜디오라고 했다면 개념적 작품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니 무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혼란스러운 것은 그의 화투를 ‘그림’이라고 보기에는 개념적 요소가 있으며 개념적이라고 하기엔 ‘회화적’이다. 경계선에 양다리를 걸친 형국이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도 정할 수 없는 미학적인 동시에 양심과 가치관의 문제다.

언제까지 이런 문제를 법에 맡길 것인가. 때론 재판의 대상이 ‘아니다’는 판결도 있어야 할 것 같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