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뇌가 조종하는 꼭두각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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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뇌가 아니다 /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의식은 복잡한 뉴런활동이자
유전자 기계라는 주장에 맞서

“예술을 하고 사랑에 빠지고
철저하게 자유의지로 사는
인간은 자화상 그리는 존재”
철학적으로‘자유’가치 정리

뇌과학, 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이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우리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 앞에 서게 됐다.‘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사랑이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 특정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명확하게 설명되는 과학적 결과인 것처럼 ‘인간은 뇌 작용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두개골 속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뉴런 활동이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이다. 프랜시스 크릭과 크리스토프 코흐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정신이란 40헤르츠(㎐) 진동수 구역의 동기화된 뉴런의 점화일 뿐’이다. 뇌 작용과 유전자 지도만 들여다봐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과학적 잠정 결론은 AI가 곧 인간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뇌과학자들뿐 아니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도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 과학적 작용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철학적 성찰 사이의 균형은 깨졌다. 현재로써는 일단 과학의 완승이다.

스물여덟 살에 본대 철학과 석좌교수가 된 독일의 촉망받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38) 교수는 이 판을 뒤집는다. “우리는 지금 깨어 있고 의식이 있다.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며, 불안과 바람을 가진다. 우리는 서로 대화하고, 국가를 세우고,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를 하고, 경제 생활을 영위한다. 예술 작품을 생산하고, 사랑에 빠지고, 착각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능력이 있다. 한마디로, 우리 인간은 정신적인 생물이다. 우리는 철두철미하게 자유롭다. 우리는 뇌가 장착된 순수한 유전자 복제 기계가 아니다. 진실로 우리는 자유롭다.”

이렇게 시작하는 책에서 저자는 우리 시대 만연한 ‘신경중심주의’에 맞선다. 책 제목인 ‘나는 뇌가 아니다’는 그 주장의 핵심이다. 인간 정신은 곧 뇌의 작용이라는, ‘나는 뇌다’에 대한 철학적 반격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시대 신경 중심주의는 신경강박(Neuromanies)과 다윈염(炎·Darwiniti)의 결합이다. 여기서 신경강박이란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지식을 계속 늘리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다윈염은 적자생존을 위한 적응력들을 재구성하면 인류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뇌의 진화 역사를 고려하면서 뇌를 연구하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같은 인식은 인간을 조정하고 통제하고, 더 나아가 억압하려는 위험한 욕망을 부르게 된다.

물론 우리는 뇌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저자도 이 점은 인정한다. 뇌가 없으면 정신도 없고 사유할 수도, 의식을 가질 수도 없다. 인간은 몸이라는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뇌와 동일하지는 않다. 저자는 이 근거로 ‘충분조건’과 ‘순박한 결정론’을 들고나온다. 먼저 우리가 잼 바른 빵을 먹으려면 잼과 빵은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빵이 빵 상자에 있고, 잼이 냉장고에 있어도 아직 잼 바른 빵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 다리가 필요하지만, 다리가 자전거 타기의 충분조건이 아닌 것과 같다. 인간 역시 신경으로만 작동할 수 없다. 게다가 인간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는 착각하고 욕망하고, 환상을 추구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며, 로봇처럼 알고리즘에 따라 번역될 수 있는 규칙만 따르지 않는다고, 따라서 로봇이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그 내면엔 인간 개개인이 느끼는 주관적 체험이 없다고 밝힌다.

인간의 결정 중 상당수가 뉴런 층위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는 ‘순박한 결정론’에 대해서도 성찰을 권한다. 자연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자연법칙을 따르지만 그 자연 법칙이 다음에 일어날 일까지 확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성찰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깃털이든 유리 구슬이든 창문에서 던지면 떨어진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하지만 깃털은 바람에 날아갈 수 있고 구슬은 떨어지다 벽에 부딪혀 깨질 수도 있다. 자연법칙들이 반드시 일어날 일을 미리 서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뇌 속에 유전적으로 결정된 기본 배선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바람, 의지와 무관하게 우리를 여기서 저기로 이행시킬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의 일이란 이유와 원인의 사슬이 아니라 그 과정은 열려 있고, 그 안에 우리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 저자는 이 같은 신경 중심주의가 한편으로는 ‘자유의 짐’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심리에 일부 기대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신의 자유를 신경 화학작용에 위임하면 책임을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기만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존재’라는 것이 도발적 철학자가 내린 결론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상을 만들고, 이를 타인들과의 대화에서 시험대에 올리며 끝없이 정신적 실체를 만들어 가는 존재. 정신적 실체의 스펙트럼은 예술, 종교, 학문, 자신에 대한 이해, 다양한 환상, 이데올로기, 자기기만, 환각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폭이 넓다. 우리는 도덕적인 자화상을 그릴 수도 있고,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물든 자화상을 그릴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든 인간은 자유롭고, 그 자유로부터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인 인간 존엄이 존재한다고 한다.

저자는 데카르트, 칸트, 피히테, 프로이트 등 정신 철학자들의 핵심 사유 개념들을 살펴내며 자신의 주장을 펼쳐간다. 과학으로 달려가는 시대, 우리 자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책은 철학자 셸링의 말로 마무리된다. 셸링은 1795년 2월 4일 친구 헤겔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철학의 알파요 오메가는 자유다.” 456쪽, 1만8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