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100人의 입’으로 만든 하모니… 콧노래 나는 ‘인생 2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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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가야읍 ‘100인 패밀리 합창단’

8세부터 74세까지 연령층 다양
50대이상이 절반차지 주축세대

생애 처음 시도하는 초보자부터
합창단 퇴직후 재도전 경험자도

처음엔 100인 100색 불협화음
5개월 연습하니 하모니 완성돼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 좋아져
음악 통해 생활의 활력 되찾아

“합창요? 내 삶에 활력소지요. 요즘 신바람 나게 합창을 즐기고 있답니다.” 나이를 잊고 합창에 푹 빠진 이들이 있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 100인 패밀리 합창단’의 주축인 50∼70대 단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오는 9월 22일 설레는 첫 무대에 올라 관객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맹연습 중이다. 합창단은 지난 4월 8세부터 74세까지 100명으로 구성됐지만, 단원 중 50대 이상이 49명이나 될 정도로 장·노년층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

이들 중에는 처음 합창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나이 들어 합창단을 은퇴하고 무료한 삶을 살다가 다시 젊었을 적 목소리를 되찾은 이도 있다. 다들 합창을 시작한 후 삶의 활력을 찾았다고 했다.

지난 27일 오후 7시 30분 함안군 가야읍행정복지센터를 찾았을 때 2층 대회의실에서 감미로운 혼성 하모니가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50여 명의 베이스, 알토, 테너, 소프라노 혼성 4색이 웅장한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날 함안에는 폭우가 내렸지만, 50∼70대 단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 모여 목소리를 맞추는 모임에 굵은 빗줄기를 뚫고 대부분 출석했다.

단원들은 발성 연습이 쉽지 않아 일반단원들이 모두 모여 호흡을 맞추는 이날을 일주일 내내 기다려왔다고 했다.

예순이 넘으면서 여성합창단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주경효(71) 씨는 100인 패밀리 합창단 창단 때 입단한 후 하루도 빠짐없이 발성 연습을 해 고운 목소리를 되찾았다.

“여성합창단에서 30년 가까이 활동하고 61세가 되면서 명예회원으로 졸업했어요. 나이가 드니 은퇴할 수밖에 없었지요. 노래는 부르고 싶은데 부를 모임이 없어 지역에 실버합창단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00인 합창단이 꾸려진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입단했어요. 다시 소리를 내려니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 처음엔 고생했는데 계속 연습하니 예전의 목소리가 나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주 씨는 멋진 하모니가 만들어지는 혼성합창을 연습할 때는 더욱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파트별로 모두 모여 화음을 맞추는 월요일이 가장 기다려져요. 그래서 지금까지 결석한 날이 없답니다. 집에서도 열심히 연습하는데 요즘 배우고 있는 ‘중화반점’이란 노래를 혼자 연습할 땐 안무에 맞춰 몸을 흔들어보기도 하고요. 호호. 10년 만에 스트레스를 확 풀며 신바람 나게 합창을 즐기고 있답니다.”

합창단 단장인 김점근(60) 씨는 한 번도 합창을 해본 적이 없는 초보자다. “그동안 생활체육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 합창이 뭔지 몰랐는데 지금은 합창이 제 삶의 활력소가 됐어요. 지친 몸도 여기 와서 함께 화음을 맞추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사실 50명, 100명이 호흡을 맞춰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게 어렵잖아요. 처음에는 내 목소리하고 옆에 있는 분들하고 화음을 맞추는 게 안 되던데, 5개월 정도 함께 하니까 지금은 나도 모르게 맞춰져요.”

찌들어 살던 김 씨의 하루하루는 이처럼 합창으로 즐겁게 바뀌었다. “합창을 시작한 후에는 집에 가서도 차 안에서도 연습하게 돼요. 아침에 일어나면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요. 왠지 하루하루가 즐겁답니다. 아내도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다가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며 응원해줘요.”

최고령 단원인 이상채(74) 씨는 지인들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추천해 합창단에 들어와 베이스를 맡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베이스 악보 보기가 상당히 어려워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악보에 따라 화음을 맞추고 멋진 하모니가 제 귀에 들릴 땐 성취감을 느껴요. 자랑도 하고 싶은데 아직 가사를 다 못 외워서 좀 그래요. 할아버지가 잘 따라오지 못한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더 열심히 연습하고 있답니다.”

식물원을 운영하는 안정미(여·61) 씨는 난생처음 합창단에 입단해 문화가 있는 삶을 알게 됐다고 했다. “살면서 합창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아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용기를 내 합창단에 가입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안 나오던 목소리가 조금씩 나와 튀지 않고 주변 화음과 어우러지는 것을 느껴요. 단원들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들 해요.”

안 씨는 여기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좋아 너무 재밌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음표라든가 부호도 학교 다닐 때 배운 게 전부인데 다시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있어요. 집에서 혼자 있을 때는 발성 연습을 하고 안무도 연습하는데 안무까지 하니 가사도 잘 외워져요. 그런데 얼마 전 남편에게 한번 봐달라고 했더니 안무가 엉터리라고 웃더라고요.”

경기 부천에서 무역업을 하고 은퇴해 고향으로 내려온 윤혁재(68) 씨는 부천에서 남성합창단을 창단해본 경험이 있는 실력파다. “노래를 좋아하지만 고향에 와보니 촌이라 그런지 남성합창단이 없어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합창단 창단 소식을 듣고 바로 가입했지요. 여기 와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어요. 처음에는 100인 100색의 목소리였는데 함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요즘엔 저 스스로 감동하게 돼요.”

지휘봉을 잡은 유영성(60) 창원대 음악과 교수도 다 함께 모이는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인근 마산이 고향인 유 교수는 2005년 함안에 집을 짓고 텃밭을 가구며 조용히 전원생활을 하던 중 신현숙 가야읍장의 부탁으로 합창단 지휘를 맡았다. 4색의 목소리로 화음을 만들어 내는 유 교수의 표정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익살스럽고 재밌다. 그래서 단원들은 틀려도 부담 없이 노래한다.

“칠순이 넘은 분들도 많아 나이 많은 분들이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시작했는데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특히 60∼70대 분들은 출석률이 아주 높은데 배우는 속도는 느리지만, 다들 재미있어 하고 어려운 발성도 잘하고 있어요.”

유 교수는 음악가로 좀 더 좋은 목소리를 나오게 하려는 욕심이 있지만 노래로, 하모니로 힐링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즐겁게 가르치니 자신도 젊어지고 있다고 한다.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욕심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틀려도 마음 즐겁게 노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화음을 만들어내는데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모두 잘 따라오고 자기 파트의 목소리도 잘 내고 있어요. 모두 첫 무대에 오르기 위해 집에서도 연습할 정도로 열정적입니다.”

유 교수는 “제각각이던 목소리를 하나로 만들어 가면서 제게도 열정이 생겨 젊은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무엇보다 단원들이 합창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삶의 활력을 되찾은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함안 = 글·사진 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