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性別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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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음성 기호인 만큼 지역·나이·신분 등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다. 심지어 남녀 성별로 다른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를 성별 방언이라 한다. 가까운 일본어의 경우를 살펴보자. 와타쿠시나 와타시는 나 또는 저를 뜻하는 남녀 공용어다. 그런데 죽다(시누·死ぬ)는 말은 남녀 용어가 다르다. 여성들은 주로 나쿠나루(無くなる)라고 한다. 없어지다 또는 보이지 않게 되다는 뜻으로, 우리말의 돌아가시다와 비슷하다. 나쿠나루에 대응하는 남성 전용어는 구타바루(くたばる)이다. 뻗다, 뒈지다는 뜻으로, 죽다의 막말 욕말이다. 나쿠나루가 점잖고 은유적이며 조심스러운 표현이라면, 구타바루는 매우 험악하고 거칠고 무례하다. 일본어의 남녀 방언에는 물(水)도 있다. 각각 미즈(みず)와 오히야(おひや)이다. 그렇다고 모든 일본어에 남녀 용어가 따로 있는 게 아님은 물론이다.

남녀 성별 방언은 이익섭 전 국립국어연구원장의 ‘우리말 산책’에 소개돼 있다. 그는 고향 강릉에도 “참 반갑과!” 하는 여성 방언이 있다고 소개한다. 한국어에도 성별 방언이 있다는 예증이다. 여성스러운 말씨는 일상 대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있지?’ ‘-뭐니?’ 같은 의문형 말투와 ‘얘!’ ‘어머나!’ 같은 감탄사다. 그에 비해 남성들의 말씨는 대체로 무뚝뚝하다. 대개는 단호한 어조로 끝맺는다. ‘있어’ ‘했어’ ‘몰라’처럼. 영어권에도 성별 방언이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잘 쓰지 않는 베이지색이나 라벤더색 등을 더 잘 쓴다고 한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 대한 답변에서도 남녀 간 차이가 있다. 남자들이 “열두 시!”라고 짧고 분명하게 답하는 데 비해, 여자들은 “열두 시?” 하고 되묻는 화법으로 동의를 구하듯 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별 방언은 남녀 간의 언어 습관에서 생긴 것으로,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을 돋보이게 해 준다. 그런 만큼 성별 방언은 성차별적 요소가 없는 한, 표현의 다양성 측면에서 존중할 만하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시댁’ ‘처가’ 같은 성차별적인 용어와는 차원이 다른 말이라는 뜻이다. 남편의 동생은 도련님이나 아가씨로 높여 부르고, 아내의 동생은 처남이나 처제로 낮춰 부르는 관행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전 국민적 공감을 얻어 언습을 바꾸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