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동철(오른쪽) 현대차 사운드디자인리서치랩 연구위원이 지난달 23일 경기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사운드 스튜디오 ‘NVH 시뮬레이터 룸’에 설치된 시뮬레이션용 제네시스에 타고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된 모의 주행 화면을 보며 배기음을 테스트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사운드가 브랜드’… 현대車 남양연구소를 가다
드라이빙 모드별 사운드 설계
소음 고려해 최적의 소리 찾아
현대차, 편안하면서 조화롭게
기아차, 역동성 앞세워 차별화
제네시스, 섬세한 교향악 느낌
타깃 소비자에 맞게 소리 튜닝
브랜드별로 콘셉트 맞추기도
차 문을 열려고 다가가는 순간부터 차에서 내릴 때까지 운전자는 시각 정보뿐 아니라 숱한 청각 정보를 접하게 된다. 이에 최근에는 자동차에서 나는 각종 소리에 통일성 있는 콘셉트를 적용함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추세다. 이제는 엔진음 같은 자동차 고유의 소리까지 전자 시스템을 통해‘제작’하고 개인별 ‘맞춤형’ 사운드로 조율할 수 있는 시대다.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엔진 사운드 = 예전에는 엔진 마운트(엔진 고정 부품), 흡기 장치, 배기 장치, 댐퍼(진동 흡수 장치) 등 기계적 요소를 이용해 특별한 엔진음을 만들어냈지만, 최근에는 전자 장비를 이용해 소리를 만들어낸다. 바로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ASD)’ 시스템이다. 실내에만 들리는 엔진음이긴 하지만, 외부에 주는 소음 피해를 줄이면서 운전자는 스포츠 드라이빙의 감성을 한껏 느낄 수 있어 장점이 뚜렷하다.
지난달 23일 경기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사운드 스튜디오 ‘NVH 시뮬레이터 룸’에서는 최신 기술로 자동차의 소리와 진동을 ‘튜닝’하고 있었다. NVH는 소음(Noise)·진동(Vibration)·혹독함(Harshness)의 약자다. 대형 화면에 컴퓨터그래픽으로 모의 주행 화면이 떠 있고, 그 앞에는 시뮬레이션용 제네시스가 스피커와 연결된 채 주차돼 있었다. 컴퓨터 게임을 하듯 차에 타고 가상 운전을 하면서 각종 소리와 진동을 테스트한다. ‘베이스라인’을 선택하면 실제 제네시스의 배기음이 나오는데, 설정을 바꿔 스포츠카 배기음을 적용할 수도 있다. 화면 속 노면에 따라 진동과 소음도 달라졌다. 조건을 바꿔 입력하면서 만약 노면 진동이 전혀 없다면 차 안에서 엔진음·배기음이 어떻게 들릴지, 차에서 머플러를 떼어내 버린다면 배기음이 어떻게 바뀔지 등까지 테스트한다. 타이어에서 올라오는 소음, 엔진룸에서 나오는 소리, 머플러에서 나오는 배기음 등을 따로따로 선택해 들어보며 최적의 사운드를 찾아냈다.
스튜디오에는 ‘사운드 컨트롤 룸’도 갖춰져 있다. 가수들의 녹음실처럼 생긴 이곳에서는 전자 악기 신시사이저(synthesizer)를 활용해 콘셉트에 맞는 엔진 사운드 등을 만들고 편집할 수 있다. 박동철 현대차 사운드디자인리서치랩 연구위원은 “내연기관 엔진이 없는 전기차로 스포츠 드라이빙을 할 경우 어떤 소리를 구현하는 게 적합할지,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자율주행차의 경우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려면 어떤 소리를 만들어야 할지 등도 앞으로의 연구 과제”라고 말했다.
◇차별화된 엔진·배기음 구현 = 시뮬레이터 룸과 사운드 컨트롤 룸 등에서 제작되고 다듬어진 소리는 실제 차에 적용돼 차별화된 엔진·배기음을 만들어낸다. 현대차그룹 자동차 중에서는 제네시스 G70, G80 스포츠, 기아 스팅어, 현대 벨로스터 등이 ASD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SLK, BMW M3·M4, 아우디 A6·A7 등에도 비슷한 기술이 적용돼 있다.
남양연구소 시험주행로에서 G70과 벨로스터에 각각 동승해 엔진음을 들어봤다. G70의 경우 밝고 역동적이며 조화로운 소리라는 3가지 키워드에 맞는 음악 화음을 먼저 선정한 뒤, 그에 따라 엔진음을 설계했다. ASD 사운드는 켜고 끌 수 있고, 에코·컴퍼트·스포츠 등 주행모드에 따라 소리가 달라졌다. ASD 시스템이 엔진 회전수(RPM), 토크, 차의 속도, 변속기가 몇 단에 들어가 있는지 등 신호를 받아들여 미리 설정해 둔 조건에 맞으면 녹음된 엔진음을 스피커로 내보낸다. 같은 드라이브 모드에서도 소리를 세부 조절할 수 있었다.
배기음까지 고려해 사운드를 설계한 벨로스터는 모드에 따라 음색이 아예 달라졌다. ‘엔진 사운드 이퀄라이저’를 ‘리파인드(Refined)’로 설정했을 때는 소리가 약간 울리는 수준이었지만, ‘다이내믹(Dynamic)’으로 바꾸자 훨씬 중·저음이 강화된 엔진·배기음이 흘러나왔다. ‘익스트림(Extreme)’에 놓자 차가 마음껏 소리를 질러댔다. 벨로스터 엔진음을 디자인한 이진성 연구원은 “다이내믹 모드는 6기통 ‘머슬 카(Muscle Car)’를 모델로 삼아 중·저음이 강하고, 익스트림 모드는 고성능 경주용 차 소리를 차용해 날카로운 소리가 강하다”고 소개했다. 특히 벨로스터에서는 개인 취향에 따라 직접 저·중·고음 음량을 각각 조절하고, 가속페달을 밟을 때 얼마나 민감하게 소리가 변하는지까지 지정할 수 있었다. 이 연구원은 “휴대전화 벨소리도 자기 취향대로 설정하는데, 값비싼 자동차에서 나는 소리를 내 맘대로 못 바꿔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에서 ‘마이 엔진 사운드(My Engine Sound)’를 만들어 저장하고 불러올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계, ‘소리’로 브랜드 이미지 구축 = 오스트리아 자동차 진동소음학회 연구에 따르면, 처음 차를 샀을 때는 겉모습과 인테리어 디자인 등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의 무의식에 작용하는 ‘소리’의 영향이 커진다. 또 나이, 성별, 지역 등에 따라 좋아하는 음역도 차이를 보인다. 통상 여성이 남성보다 5∼10데시벨(㏈) 낮은 소리를 좋아한다고 한다. 여러 자동차의 방향지시등 작동 소리를 들려주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고르게 한 결과, 한국 소비자는 가장 경쾌한 깜빡이 사운드를 좋아했지만 독일에서는 같은 소리가 최하위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결국 ‘타깃(target) 소비자’의 선호에 맞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게 자동차 업체에 중요한 과제다. 완성차 업체들은 차에 올랐을 때 들리는 ‘웰컴 사운드’ 멜로디부터 엔진음, 배기음, 각종 경고음, 방향지시등 깜빡이는 소리, 시동을 껐을 때 운전자를 배웅하는 멜로디 등까지 세심하게 구성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웰컴 사운드 등의 멜로디는 TV 광고 멜로디를 변주해 쓴다. 박 연구위원은 “현대차그룹 안에서도 현대차냐, 기아차냐, 제네시스냐에 따라 사운드 콘셉트가 다르다”며 “차 안에서 들리는 소리부터 TV 광고에 사용하는 멜로디, 전시장 배경음악 등 ‘공간’의 소리 콘셉트까지 통일감을 주도록 구성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정제·편안함·조화를, 기아차는 차별성·역동성·자신감을 콘셉트로 하고 있다.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균형감·섬세함·교향악 느낌 등이 사운드 콘셉트다.
화성 =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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