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예술로 기록된 ‘勝者의 역사’… 권력은 갔지만 作品은 남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비드,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캔버스에 유채, 271×232㎝, 1802. 루브르박물관 소장

전준엽이 만난 美感의 세계 (1) 시대적 표현의 진실성

정치적 도구 쓰인 미술작품
작가의 천재성 드러내기도

나폴레옹 영웅화한 다비드
실물 대신 이상적 인물 창조
新고전주의로 미술사 한 획

예수 연상케 한‘마라의 죽음’
정치적 순교?로 이미지 치장

제리코作 ‘메두사호의 뗏목’
생존자 취재… 시체 스케치
사실주의 회화의 기틀 다져

이성이 아름다움의 척도로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신의 조화로 여겼던 자연을 인간의 머리로 풀어내면서부터다. 서양의 17∼18세기엔 아름다움의 가치를 과학의 발달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예술도 이성에 의한 진실 표현에서 최고의 가치를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하는 역사는 기록된 사실보다 믿음의 농도가 짙어 보였다. 기록된 역사는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역사는 힘의 논리를 기록하고 있다. 힘을 쥔 승리자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는 권력의 행적만 드러내 왔다. 그들의 악행조차도 역사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던 것처럼 용납한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매스컴은 정치가나 사회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행적만을 주워섬긴다. 그리고 역사는 이를 기록하고, 훗날 사람들은 이렇게 기록된 역사를 통해 우리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할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정확한 모습일까? 아니다. 이 시대는 주어진 본분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들이 생산하는 가치에 의해 성격이 정해지며, 성실하게 살아낸 만큼 쌓이는 것이다.

이런 역사를 주제로 삼은 예술은 과연 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예술이 정치권력을 만나면 타락한다. 권력을 선전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런 예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러시아는 20세기 초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룬 뒤 이를 선전하기 위해 예술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특히 영화와 미술의 역할이 컸는데, 이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한다.

권력의 도구로 이용된 미술 중에서도 작가의 탁월한 재능 덕분에 미술사에서 살아남은 경우가 있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가 대표적인 예다. 다비드는 서양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화가 중에서 정치적 성향이 매우 강했는데, ‘정치화가’로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을 정도다. 프랑스대혁명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그는 로베스피에르와 이념적 동지애를 나눴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타고난 정치 감각으로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는 화가로 성공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비드, 마라의 죽음, 캔버스에 유채, 165×128.3㎝, 1793. 브뤼셀 왕립미술관 소장

그런 정치 감각이 잘 드러난 대표적인 작품이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이다. 우리에게 영웅적 이미지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는 그림이다. 나폴레옹의 명에 따라 제작된 것으로, 1800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정복을 위해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었던 실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다비드에게 ‘사나운 말 위에 평온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리라고 명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구체적인 포즈와 분위기까지 정해줬지만, 다비드가 영웅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역사적 진실을 왜곡한 창작물이다.

제작하는 동안 나폴레옹은 한 번도 모델로 서지 않았다. 이 점이 오히려 다비드에게는 기회였다. 그는 재능을 발휘해 나폴레옹을 그리스 조각 같은 이상화된 인물로 바꿔버렸다.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당시 입었던 군복을 보고 그렸으며, 정확한 자세를 포착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사다리 꼭대기에 앉히고 구도를 잡았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의 위엄과 신적인 능력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현장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말의 모습도 사납게 바람이 몰아치는 산꼭대기의 상황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는 설정이다. 마치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연출한 세트 같은 분위기다.

프랑스 신고전주의가 추구했던 미학이 바로 이런 분위기였다. 권력 선전을 위해 태어난 그림이지만, 미술사에 명화로 남은 것은 신고전주의 미학을 훌륭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말갈기와 붉은 망토가 흔들림 없이 진격을 명하는 나폴레옹의 이상화된 모습에 웅장한 느낌을 불어넣고 있다. 매우 불안정한 구성인데도 안정감을 주는 것은 나폴레옹의 꼿꼿한 자세와 화면 우측 상단에 있는 먹구름의 방향, 그 반대편 하단에 그린 불쑥 솟은 바위의 방향 때문이다. 이런 요소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사선 구도의 움직임을 상쇄시켜주고 있다.

다비드는 하늘이 준 기회로 알고, 혼신을 다해 나폴레옹의 영웅적 이미지를 국민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이 그림을 완성했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냉소적이다. 나폴레옹은 화창한 봄날, 노새를 타고 편안하게 알프스를 넘었다고 한다.

영향력이 막강했던 정치가의 죽음은 생물학적 테두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를 남긴다.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장 폴 마라의 죽음이 그렇다. 마라는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급진적 혁명 세력을 이끌며 공포 정치를 연출한 인물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캔버스에 유채, 717×491㎝, 1818∼1919, 루브르박물관 소장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많은 정적을 만들었던 그는 1793년 7월 13일 암살당한다. 왕당파인 샤를로트 코르데라는 25세의 아가씨에게 목욕 중 살해된 것이다. 혁명 후 프랑스를 손에 넣은 급진 세력 입장에서 마라의 죽음은 정치적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호재였다. 여기에 동원된 것이 예술이었다. 다비드가 적임자였다. 그는 혁명 정부에 깊이 관여하면서 루이 16세의 처형을 결정한 국민공회 의원으로까지 활동할 정도로 정치에 적극적이었다. 마라와도 가깝게 지냈고, 그가 암살당하기 전날에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치적 배경을 깔고 태어난 ‘마라의 죽음’은 정치 회화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우 추악한 몰골을 지녔으며 심한 피부병이 있어 목욕을 자주 했던 마라는 독선적인 정치가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다비드는 마라를 민중의 가까운 친구이자 공공의 선을 위해 헌신하는 숭고한 인물로 만들어 놓았다.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만 부각해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비드의 생각은 혁명 정부의 구미에 꼭 들어맞았다. 급진 개혁 세력은 구체제 청산을 위한 당위성이 필요하던 차였다. 이때 정해진 각본처럼 일어난 마라의 암살은 정치적 순교로 분칠하기에 더없이 좋은 재료였다.

정치적 좌표에 의해 윤색됐지만 그림 자체로 보면 죽음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구현했다. 마라의 모습은 예수 이미지를 연상케 할 만큼 숭엄하다. 화면 위쪽 반 이상을 차지하는 어두운 배경이 고요한 죽음의 분위기를 잘 받쳐준다. 평온한 잠에 빠진 듯 죽은 마라의 밝은 피부가 은은한 조명 속에서 빛나고 있다. 무한한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예수의 부활을 보는 듯하다.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이 밝은 세상을 예고한다는 믿음을 민중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게다. 이런 생각은 배경에서 보인다. 화면 오른쪽 위 모서리에서 서서히 들어오는 빛이 그것인데, 성자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하는 기독교 회화의 구성 방식을 따랐다.

역사는 사건을 연결한 스토리다.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있지 않고서야 사실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가가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장 조사나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목격자나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도 사건의 주관적 단편일 뿐 전체를 아우르기는 힘들다. 이를 통해 진실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결국 역사는 해석된 사실이다. 그것이 얼마나 상식적 객관성을 가지는지 판단하는 것이 역사의 실체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예술가의 해석도 그렇다. 따라서 사건의 진상보다는 해석에 의한 객관적 가치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파고들어 예술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서른셋에 요절한 천재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의 대표작 ‘메두사호의 뗏목’이 그렇다. 제리코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해 극적인 가치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루브르박물관이 대표적 소장품 중 하나로 꼽을 만큼 프랑스가 자랑하는 이 작품은 우선 스케일(717×491㎝)에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실제 사건을 낭만적 상상력으로 재현해 극적 효과를 최고조로 표현했다.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장면이지만 매우 강한 현장감을 띠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1861년 6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세네갈로 출항한 범선 메두사호는 항해 도중 암초에 부딪혀 난파되는 사고를 당한다. 무능력한 선장과 장교들은 선원과 승객을 버리고 구명보트로 도망간다. 남아 있던 149명은 급조한 뗏목을 타고 탈출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12일간 표류하다가 극적으로 아르고호에 구조됐을 때 생존자는 15명뿐이었다. 대부분 탈진해 바다에 빠져 죽었고, 남은 사람은 극도의 기아와 정신착란으로 인육을 먹는 끔찍한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사건 2년 뒤에 그려진 이 작품은 동적 구도와 강한 음영의 대비로 생존을 향한 인간의 야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리코는 리얼리티를 표현하기 위해 사건 정황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생존자를 찾아 증언을 취재하고, 시체수용소에 가서 시체를 스케치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실에 입각한 제리코의 제작 태도는 이후 사실주의 회화 정신의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다양하고 역동적인 인물 배치가 화면 전체를 출렁이게 한다. 죽음과 마주한 이들은 필사적으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수평선 위로 솟구친 인물이 흔드는 붉은 깃발(자신이 입었던 옷)에서 보인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몸부림이다. 이 인물을 꼭짓점으로 뗏목에 있는 사람들의 운동감이 모여든다. 그래서 보는 이의 시선은 붉은 깃발로 향한다. 뗏목 위의 생존자들은 큰 삼각 구도 속에서 다양한 포즈로 그려져 있다.

제리코는 극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다양한 시각을 표현해 사건의 진상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극복하려는 태도와 비관적인 관점이 동시에 나타나 있다. 돛대를 기준으로 왼쪽은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포기한 사람들의 체념한 모습이다. 반면 오른쪽은 필사적으로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캐내는 것이 예술적 표현이 아닐까.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