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고’ 외치지 않을 뿐 영화 만드는 일과 비슷”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배창호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폭력적인 영화가 없어서 마음에 들었고, 산 아래 상영관에서 자연경관과 더불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좋았다”고 이 영화제의 매력을 소개했다. 김동훈 기자 dhk@

7일 개막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배창호 집행위원장

고래사냥·기쁜 우리 젊은날…
영화 찍다가 영화제로 컴백

“山 아래 상영관서 영화 축제
가족 관객 끌어모을 궁리해”

‘하이디’ 같은 고전 영화부터
다큐·애니 넣은 프로그램 짜
아동·노인 함께 즐길수 있어

“가족 단위 관객을 위해 할리우드 고전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을 상영하는 섹션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배창호 울주세계산악영화제(UMFF) 집행위원장은 지난 4월 영화제에 합류한 후 ‘움프 클래식’과 ‘움프 투게더’를 포함한 ‘움프 라이프’ 섹션을 신설한 것을 가장 공들인 부분으로 소개했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족 관객 유치를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내가 어렸을 때 감명 깊게 봤던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 영화 ‘산’을 찾아냈고, ‘사운드 오브 뮤직’과 ‘하이디’ 등을 넣어 ‘움프 클래식’을 마련했다”며 “또 ‘움프 투게더’에는 미취학 아동부터 노년층까지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을 넣었다”고 밝혔다.

지난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을 연출하며 영화계에 데뷔한 배 감독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영화제를 여는 일이 영화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아 집행위원장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화도 감독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레디 고’만 외치지 않을 뿐 모든 과정이 비슷하다”며 “제작자와 협의하는 방식으로 군 관계자를 만나고, 스태프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을 지휘하고, 열심히 홍보하는 등 영화를 만들 듯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 위원장이 처음 꾸리는 제3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7일 개막해 11일까지 닷새간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와 별빛극장, 숲속극장 등에서 열린다. ‘새로운 도전’(New Journey)을 슬로건으로 내건 올해 영화제에서는 41개국에서 초청된 139편의 영화가 관객과 만난다. 배 위원장은 “산을 좋아했고, 여러 산을 올랐다. 그래서 이 영화제의 특별한 콘셉트에 끌렸다”며 “폭력적인 영화가 없어서 마음에 들었고, 산 아래 상영관에서 자연경관과 더불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좋았다”고 이 영화제의 매력을 소개했다.

그는 또 “올해 영화제에 영화인과 산악인이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상영작이 산악영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연·환경·생태·탐험·스포츠 등 다양하게 확장돼 있지만 아무래도 영화 마니아가 좋아하는 작품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 수가 늘어나는 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영 편수를 점차 확대하고, 영화진흥위원회 지원대상 영화제가 돼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겠다”며 “그렇게 되기 위해 세 번째 ‘봉우리’가 중요하다. 올해 영화제를 치르고 나서 관객 반응 등을 분석해 장기적 방향을 잡은 후 정체성을 지키면서 지속 가능한 영화제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배 위원장은 지난 36년 동안 ‘고래사냥’(1984),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깊고 푸른 밤’(1984),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개그맨’(1988), ‘천국의 계단’(1991), ‘흑수선’(2001), ‘길’(2004) 등 수많은 화제작을 내놓으며 1980년대에 충무로 대표 흥행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9년 ‘여행’을 끝으로 연출작을 내지 않고 있다. 6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처음에는 관객에게 사랑을 전하고, 관객의 사랑을 일깨우는 영화를 만들었다”며 “그러다가 1986년에 ‘황진이’를 찍으며 가장 위대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리스도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막연한 소망이 생겼다. 10년 정도 걸려 3년 전에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는데 ‘내가 이 영화를 해도 되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털어놓았다.

심한 마음고생에 시달리던 그는 2015년 6월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었지만 다행히 안전지대로 몸을 피해 크게 다치진 않았다. 이에 대해 그는 “당시 심신이 약해져 있었고, 석 달 동안 잠을 못 자 판단력이 흐려졌다.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나중에 상황을 보고 내가 투신했다는 것을 알았다”며 “영화인들과 가까이 지내며 지금은 몸과 마음이 회복돼 다시 그리스도 영화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다. 또 로드 무비 한 편을 써놓고, 투자자와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