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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04일(火)
여당에 발목 잡힌 대통령의 규제 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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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공정경제,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이라는 3개 축으로 돼 있다. 고용·투자와 같은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하자 그 타개책으로 혁신성장을 경제 운용의 핵심 정책으로 삼고 있다. 최근 문 대통령은 의료기기 규제와 은산분리 규제의 완화를 위한 국회 입법을 주문했다. 8월 31일에는 “산업화 시대에는 석유가 성장의 기반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가 미래 산업의 원유”라고 강조하며 빅데이터 산업과 관련된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를 지시했다.

문 대통령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3번이나 직접 산업 현장을 방문하며 규제개혁을 강조한 것은 낡은 규제의 개혁이 혁신성장을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등 핵심 지지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규제 완화를 강조하는 것은 혁신성장으로 우리 경제의 활로를 찾는 일이 그만큼 시급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 완화 법안의 8월 임시국회 처리가 무산되면서 소상공인들이 간절히 바랐던 민생경제 법안들의 처리가 불발됐다. 혁신성장의 기반이 되는 ‘규제 샌드박스 5법’의 전체회의 상정도 중단됐다. 이 법안은 신규 사업이나 지역별 전략 산업에 대한 규제를 ‘원칙적 금지, 예외 허용’의 포지티브 방식에서 ‘원칙적 허용, 예외 규제’의 네거티브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재벌 특혜라고 주장하는 여당 내 소수 강경파의 반대 때문에 민생경제 패키지 법안들의 처리가 연쇄 불발된 것이다.

정치권이 ‘규제 완화는 보수가 하고, 진보는 반대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재벌의 잘못을 강력히 처벌할 필요는 있지만, 규제 완화를 재벌 특혜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최근 규제개혁 신문고를 통해 해결된 수천 건의 규제 개선 사례를 분석해 보면 국민 생활, 영세 자영업자 관련 규제 개선이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업과 직접 관련된 것은 20%에 불과하다. 이들 20%도 대부분 중소기업을 위한 규제 개선이다. 규제 완화는 재벌을 위한 게 아니라 민생을 위한 것이다. 민생을 위한 정책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지금 한국 경제는 혁신 능력과 성장 활력이 떨어지는 구조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자동차·철강·조선·석유화학 같은 주력 산업은 중국의 맹추격에 경쟁 우위를 잃어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는 한국이 4차산업에서 중국에 뒤진 이유가 기술이 아니라 규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규제라는 진입 장벽을 제거해 새로운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약자를 보호하고 재벌 특혜를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규제 완화를 반대하면 기업가 정신의 발현을 꽁꽁 묶어 벤처 생태계를 해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규제개혁을 강력히 추진했지만 신설되거나 강화된 규제가 9715건으로 줄어든 837건의 10배가 넘었다. 규제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자료다. 규제 완화로 피해를 보는 집단이 있을 경우 이들의 저항으로 규제 변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규제개혁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을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더불어민주당이 적극 도와야 한다. 여당은 존재 이유를 깨달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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