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양녕, 과음 잦고… 효령, 한 모금도 못해… 자제할 줄 아는 충녕이 大權후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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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탐하는 자를 사람들은 천하게 여깁니다. 전하께서 울산의 전복(蔚鰒)을 급히 보내라고 요구하셨다는 데 사실입니까?”

1657년 8월 송시열이 국왕 효종에게 식탐(食貪)을 절제하라며 한 말이다. 그에 따르면 어느 장수가 “왕명”이라며 전복(全鰒) 거두기에 급급하다는 소문이 영남 해안가에 파다한데,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왕의 큰 수치였다.

먹는 것은 사람의 몸과 생명에 관계되는 바라서 중요하지만, 음식에 집착하는 것은 ‘작은 것에 매달려 큰 것을 잃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게 송시열의 조언이었다. 여기서 작은 것이란 물론 허기진 배를 채우거나 음식 맛에 집착하는 것이고, 큰 것은 그 때문에 잃게 되는 품위와 인간관계를 일컫는다. 먹는 방송이 차고 넘치는 요즘 시각에서 보면 이질감까지 느낄 수 있는 요구다. ‘왕이 전복 좀 먹겠다는데 그깟 걸로 시비 거는 신하가 나쁜 자’라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먹을 때 배부르게 하지 않는 것(食無求飽)’을 귀히 여겼다.

송시열보다 150여 년 뒤에 살았던 여성 지식인 빙허각 이 씨는 ‘음식 먹으면서 생각해야 할 것’을 ‘규합총서’에 기록했다. 이 책에 보면 우리가 밥 먹을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밥이 어디에서 왔는지다. 농부의 땀을 기억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해야 한다. 다음으로 부모님 등 고마운 분들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혹시 내가 음식을 탐하고 있는지를 경계하며 먹어야 한다. 식탐은 군자 된 자의 허물이기 때문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음식에 대한 절제가 비단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만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과자의 유혹을 이겨낸 아이들의 성공적인 성장 과정을 추적 조사한 ‘마시멜로 실험’ 사례가 그렇다. 유대인들은 욤키푸르(대속죄일)나 부림절(유대인이 하만의 간계에서 구원된 것을 기념하는 날)에는 한 끼라도 금식을 해야 한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상 앞에서 반드시 기도하고 밥을 먹게 하는 것도 실은 ‘음식남녀(飮食男女)’라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 앞에서 절제하는 연습을 시키는 교육과정이랄 수 있다.

“충녕대군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적당히 마시고 중간에 그칠 줄 안다(適中而止)”. 양녕 대신 충녕(세종)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태종이 한 말이다. 태종에 따르면 국가를 경영하는 자는 외국 사신 맞이 등에서 술 마실 기회가 많다. “술 마시는 것이 비록 무익하나, 주인이 한 모금도 잘 마실 수 없다면 어찌 손님을 권하여 그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느냐?”는 그의 말처럼 술 마시는 매너는 외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큰아들 양녕은 지나치게 술을 좋아해서 실수할 때가 많았다. 둘째 아들 효령은 한 모금도 못 마셨다. 오로지 셋째 아들 충녕은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분위기에서 스스로 그칠 줄(止) 아는 힘을 가졌다. 그런 절제력 덕분에 충녕은 “중국 사신을 맞이할 때 몸가짐이 빛나며(身彩) 언어와 동작이 두루 예에 부합(周旋合禮)”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자기 절제력과 ‘글로벌 외교 매너’를 겸비한 준비된 왕위 후보자가 충녕이라는 게 태종의 판단이었다.

우리의 차세대들이 절제력과 글로벌 매너를 갖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최근 몇 년간 ‘세종의 식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 해법을 발견했다. 청소년 세종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은 밥상머리에서 어떤 자세로 앉아야 하는지, 그리고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게 왜 중요한지를 처음 배웠다고 했다. 친구의 밥상을 차려주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돕는 기쁨이 참 크다는 걸 깨달았다는 학생도 있었다. 만약 학교 급식 시간을 단시일 내에 바꿀 수 없다면, 올가을 창덕궁 옆 ‘서로재’에서 시범 실시하는 ‘세종의 식탁’ 프로그램을 널리 보급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