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푸드 X파일>무는 천연 소화제… 해장에도 효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무는 배추·고추·마늘과 함께 우리나라 4대 채소 중 하나다. 예부터 친숙한 식재료여서 ‘내 신세가 무 밑동 같다’(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외롭다), ‘무 캐다 들킨 사람’(남몰래 무슨 짓을 하다가 들켜 무안해하는 모양), ‘무 농사 잘못하면 가랑무(자잘하고 크기가 작은 무)만 생긴다’(일을 잘못하면 결과가 나쁘다) 등 속담에도 자주 등장한다.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다. 기원전 2000년에 세워진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비문에 노동자에게 무를 제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전래됐다. 한반도엔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 무렵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 간행된 ‘향약구급방’엔 무가 흔히 먹는 식재료로 기록돼 있다. 고려의 학자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는 무가 청(菁)이라 표기됐다.

‘조선 재래무’는 맛이 좋지만 짧고 튼실하다. 과거에 다리가 굵은 여성을 ‘무다리’라고 불렀던 것은 그래서다. 서울무(경성무)·계림무(경주)·백양사무(호남) 등이 재래무를 대표한다. 강화도에서 많이 재배되는 순무는 무와는 촌수(寸數)가 멀다. 오히려 배추와 가깝다.

봄무·여름무(고랭지무)·가을무(김장무)·겨울무(월동무) 중 가장 많이 재배되는 것은 김장철에 수확하는 가을무다. 우리 선조가 건강에 가장 이로운 무로 친 것은 겨울무다.

“겨울에 무, 여름에 생강을 먹으면 의사를 볼 필요가 없다” “겨울무 먹고 트림을 하지 않으면 인삼 먹은 것보다 효과가 있다” 등 겨울무를 예찬하는 속담도 많다. 겨울엔 무를 과일처럼 깎아 먹으면서 “동삼(冬蔘·겨울철 삼) 먹는다”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겨울무가 다른 계절의 무보다 영양적으로 특별히 더 나을 까닭은 없다. 채소가 귀해 비타민·미네랄 섭취가 힘들었던 조상에게 겨울무는 그 자체로 고마운 존재였다.

무는 맛이 오묘하다. 단맛은 무에 풍부한 포도당·설탕 때문이다. 생무를 먹으면 특유의 알싸한 맛이 느껴지는데 양파·마늘에도 들어 있는 황(黃)화합물 맛이다. 무를 썰거나 씹을 때 미로시나아제란 효소가 활성화되는데 이것이 황 화합물을 발생시킨다. 식초에 무를 담그면 미로시나아제가 활성을 잃어 알싸한 매운맛도 사라진다. 무의 끝부분에서 얼얼한 매운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의 머리에서 아래로 갈수록 황 화합물이 더 많이 들어 있어서다.

식사할 때 무를 곁들이면 소화가 잘된다. 무 속에 전분 분해 효소인 아밀라아제를 비롯해 다양한 소화 효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를 많이 먹으면 속병이 없다”는 옛말은 이래서 나왔다. 밥·떡을 과식했을 때 무즙·무채·무동치미를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

무의 소화효소는 위 통증·위궤양을 억제하는 데도 유용하다. 식후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는 등 불쾌감을 느낀다면 무를 갈아 먹는 것이 방법이다.

애주가도 관심을 가질 만한 채소가 무다. 무에 풍부한 비타민 C가 숙취의 주범인 아세트알데히드의 분해를 돕기 때문이다. 무에 든 아밀라아제는 음주 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더부룩한 증상을 덜어준다.

영양소는 뿌리보다 잎(무청)에 많다. 조선무의 경우 무청 100g당 칼슘 함량은 249㎎으로 뿌리(26㎎)의 10배 가까이로 높다. 칼륨·비타민 C 함량도 무청이 뿌리를 압도한다. 영양학자가 무청을 주로 먹는 열무·총각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래서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대표